마음만은 늘 시골(쥐)녀로 살고 싶다
나는 23년간 서울에 살았고, 호주에 와서는 시드니에 거주했다. 그야말로 도시녀였다.
도시에 익숙한 사람이고 24시간 모바일은 늘 내 곁에 있어야 안심이 된다.
우리 땅에서는 4g가 안 터진다. 약 5분만 내려가서부터는 연결이 되는데, 거의 우리 땅 앞에서 연결이 끊기는 셈이다.
모바일 없이 살 수 있을 것인가? 가 일단 가장 큰 걱정이었다. 우리가 산 땅은 그야말로 땅만 덩그러니 있다.
전기도 물도 아무것도 없는 그냥 숲 속 한가운데다.
처음에는 가까운 카라반 파크에서 잠을 자면서 오고 갔다.
1박에 $130이니까 2박 3일에 $260 + 기름값 왕복 대략 $150 하니 이것만 해도 쓰는 돈이 엄청났다. 그래서 우리는 텐트에서 지내기로 했다. 어무이는 본인이 호주 벼룩시장에서 텐트를 구매했다고 했고 잘 살겠지...확인도 안해보고 가서 폈는데 글쎄 그냥 해변가에서 임시로 쳐 놓는 바람 불면 날아가는 텐트였다. 할 수 없이 그냥 텐트에서 잤는데 나만 쿨쿨 잘 잤다.
또 하나의 큰 난관에 부딪혔다. 화장실이었다.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10분 떨어져 있는 타운의 파크 화장실까지 전력질주 운전을 해서 갔다 와야 했다. 일하다가 화장실 가고 싶으면 운전을 해서 타운에 왔다 갔다 해야 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어느 날부턴가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삽을 가지고 땅을 파서 해결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나는 자연인이다~~>>>를 몸소 생활화 하기 시작했다.
시골에 제일 잘 적응하는 건 나였다. 특히 잠자리에 예민한 부모님은 잘도 설치고 너무 더우면 더위 먹어 잘 못 먹고 추우면 또 감기 걸려 힘들어했다. 침대에서만 생활하던 나는 불편할 거 같다고 궁시렁 거렸지만 덥던 춥던 혼자만 제일 잘 먹고 잘 자고…1년 사이에 6킬로가 쪘다.
벼룩시장에서 어무이가 사 온 $50짜리 텐트는 산지 한 달 만에 결국 비바람에 날아갔다. 그 순간에도 쿨쿨 자고 있던 나는 어무이가 마구 때려서 겨우 깨 차 안으로 피신했다.
도시녀라고 굳게 믿었던 나는 사실 시골녀였나 보다.
'시골쥐와 서울쥐'가 떠올랐다.
서울쥐가 시골쥐를 만나려고 시골로 왔다. 시골쥐가 먹는 음식이 초라한 것을 가엾게 여긴 서울쥐가 “서울에는 맛있는 음식이 얼마든지 있으니 실컷 먹여 주겠다.”면서 시골쥐를 서울로 초대하여 음식이 풍부한 부엌으로 데리고 가서는 그곳에 쌓여 있는 음식을 맘껏 먹으라고 했다.
음식을 먹으려 할 때마다 사람이 들어오는 바람에 번번이 도망하느라고 제대로 먹지 못하고 배만 곯게 된 시골쥐는 서울쥐에게 “맛있는 것이 아무리 많다 해도 마음 편히 먹을 수 없는 여기보다, 초라하더라도 속 편하게 살 수 있는 시골이 더 낫다.”라고 말하고는 돌아가 버렸다는 이솝우화 말이다.
쥐띠이기도 한 나는 아무것도 없는 시골 땅이라도 아무 걱정 없이 먹고 일하고 자는 이 삶에 점점 매료되어갔다.
나는 시드니에서 4일 시골에서 3일 이렇게 생활하고 있다. 시골 생활에 익숙해져 가는 나는, 도시인 시드니에서도 마음만은 늘 시골(쥐)녀로 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