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키그레이 Dec 17. 2023

괴물은 누구게?

영화 [괴물] - 고레에다 히로카즈


언제나 그렇듯 [스포주의]

줄거리를 쓰자니 너무 길어질 듯해서 부분 부분 생각나는 장면들 위주로 작성하였습니다.

대사들은 문장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 조금 틀릴 수도 있습니다.




 "하얀 선을 넘으면 지옥에 가"


 영화 초반부... 등교하는 미나토가 차도와 인도의 경계선으로 표시해 둔 하얀 선을 넘어가자 싱글맘인 사오리가 하는 말이다. 미나토는 그런 건 미신이라며 유쾌하게 넘겨버린다.


 선은 일종의 규칙이다. 자동차는 찻길로, 사람은 인도로 다니도록 하여 불미스러운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선은 존재한다. 선을 넘는다는 것은 개인을 침해하고 공격하는 것이다. 선을 넘는다는 것은 보통이라고 하는 보편적인 기준을 뛰어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경외로운 존재나 용기 있는 사람 혹은 자유로운 사람으로 비칠 수 있지만 보통은 무례하고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비칠 때 하는 표현이다.


 미나토와 요리는 요리의 아버지나 학우들에게서 선을 넘은 인간이었던 것이다. 비정상적인 뇌를 가졌기에 인간의 뇌가 아닌 돼지의 뇌로 불렸던 것이다.

(왜 돼지의 뇌로 불리었는지는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설정이라 이 부분은 스포 하면 재미가 반감될 수 있을 것 같아 표현하지는 않았습니다.)


 영화 중반부에 호리 선생님이 요리 아버지를 찾아갔을 때, 대낮부터 만취한 요리 아버지는 호리 앞에서 대놓고 요리는 돼지의 뇌를 가졌다고 말한다. 그런 요리는 치료를 해야 한다고 말을 한다.

 실제로 정신병이라 불리는 질병들을 치료하기 위해 뇌 수술을 하곤 했었던 것을 보면 자신의 기준에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은 뇌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은가.

 

 미나토는 사오리와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조수석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내린다. 큰 부상은 없지만 미나토는 병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오리에게 묻는다.


"돼지의 뇌를 이식한 인간은 돼지야? 인간이야?"


 주변으로부터 다른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되고, 또 그런 자신을 보며 주변에서 조롱하고 돼지의 뇌라 불렸을 때, 미나토와 요리는 스스로를 인간이 아닌 돼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타인의 시선이 '혐오'일 때 '자기혐오'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미나토는 자신이 보통의 선을 넘어버린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스스로를 괴물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지 않을까 한다.


 자신의 괴물 같은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미나토는 '거짓말'을 하게 된다. 실제로 그런 적은 없었지만 담임선생님인 호리가 자신보고 돼지의 뇌라고 불렀고, 때렸다는 거짓말을 하게 된다. 


 미나토의 거짓말에 학교는 크게 관심이 없다. 그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고 이는 학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조심한다. 그저 이 일이 호리 선생님의 사과로 끝냈으면 하고 미나토가 거짓말을 한 이유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엄마 사오리는 미나토의 문제에 대해 선생님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인간으로 대해주세요”


 어쩌면 사오리는 미나토가 가진 불안한 이유, 스스로를 괴물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렇기에 미나토는 괴물이 아닌 그냥 똑같은 인간이라고 호소한다.

 사오리는 미나토가 자신의 진심을 표현하기를 바란다.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 사진 앞에서 오늘 있었던 일을 아버지에게 말해줘야지 하며 미나토의 진심을 듣고 싶어 하지만 미나토는 끝내 사오리가 들리도록 말하지 않는다.


"다시 태어나야 하는 걸까?"


 미나토의 거짓말에 관심도 없어 보이던 교장선생님은 미나토가 자신이 거짓말을 한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크게 관심이 없는 듯이 말한다.


 "어찌 되었든 아무 상관은 없어"


 사실 교장선생님도 거짓말을 했다고 말을 한다. 이전에 주차장에서 차를 주차하다가 손녀를 치어 죽게 한 일이 있었다. 남편이 주차를 하다가 일어난 사건이라 공표되었지만 실상은 주차를 한 사람은 교장선생님 본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교장선생님이 자신의 교장직을 유지하기 위해 그런 거짓말을 한 '괴물'로써 보고 있다.

 교장선생님과 미나토의 본질적인 고민과 불안함은 다르지만 사람들에게 말을 하지 못한다. 어찌 되었든 사람들은 자신들을 괴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죄책감과 불안함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은 자신들이 아닌 자신들을 괴물로 보고 있는 타인과 사회인 것이다.


 미나토와 요리는 둘 만이 아는 폐쇄된 전철에서 게임을 하고는 하는데, 카드 한 장을 자신의 이마에 대고 질문을 하여 그 카드의 그림이 무엇인지 맞추는 것이다. 상대방의 시선에서만 보이는 내가 가진 카드를 상대방에게 질문을 통해서 알아맞혀야 한다. 이 게임 역시 타인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을 궁금해하고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것임을 보여주었던 게임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교장선생님과 미나토는 속에 꽉 막힌 응어리를 풀어내고자 트럼펫이나 색소폰을 그냥 후 힘차게 악기를 분다.


 미나토의 거짓말로 폭력교사가 되어버린 호리는 억울한 마음에 미나토를 몰아붙인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냐면서 미나토를 쫓아가며 묻는다. 호리는 자신의 억울함에 미나토의 불안함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자신의 억울함에 사로잡힌 호리는 자살을 할 것처럼 학교 건물 지붕에 올라간다. 그 순간 미나토와 교장선생님이 부는 악기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게 된다.

 

미나토의 응어리가 악기소리가 되어 호리의 귀에 드디어 들리게 되면서 호리는 미나토의 불안함을 이해해보려고 할 수 있게 된 것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미나토와 요리의 불안함의 원인을 드디어 알게 된 호리는 태풍이 불어오는 날 미나토의 집 앞에서 소리친다.


"미나토 넌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어."


 하지만 미나토는 이미 방 안에 없다.


 영화 후반부...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미나토는 점점 자신을 찾아가려고 한다. 태풍이 올라오고 있는 날에 미나토는 산속의 방치된 전철에서 요리와 함께 있는다. 태풍과 산사태의 소리에 요리는 출발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말한다. 산사태와 태풍이 본인들의 불안함을 대변하듯이 거칠게 오지만 미나토와 요리는 새로운 출발을 하려고 한다.


 햇빛 쨍한 아침이 찾아오고 요리와 미나토는 전철 밖으로 나오고 요리가 "새로 태어난 것일까?" 하며 묻는 말에 미나토가 답을 한다.

 

"아니, 그냥 원래 그대로 가는 거야"


 미나토는 자신과 요리가 괴물일까에 대한 고민에서 벗어나 온전한 자신을 받아들인다. 날씨 좋은 날 벌판을 웃으면서 뛰어다니는 것을 끝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미나토는 원래 태어난 모습 그대로 살아가면 된다는 것을 안다는 것으로  다른 의미로 다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선을 넘은 미나토는 괴물인지 인간인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자유를 느낄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외에도 여러 장면들이 떠오르고 하고 싶은 말도 많지만 두서없는 글이 더 길을 잃을 것 같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운 날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작가의 이전글 돌란의 캐딜락 [스티븐 킹 단편소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