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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키그레이 Jun 23. 2024

여름이 되면 바오밥나무는 새잎을 틔운다.

2021년 봄여름 사이즘, 4-5월이었던 것 같다. 


바오밥나무 씨앗을 구매를 했다.


씨앗 3개가 왔고, 커피를 먹고 씻은 플라스틱 음료용기에 흙을 담아 씨앗들을 바로 심었다.

바오밥나무 씨앗은 두꺼워서 물에 적신 휴지 위에 며칠을 두어 껍질을 부드럽게 해주는 것이 씨앗 발아에 도움이 된다고 했지만, 그냥 심었다.


흙이 마를 때마다 물을 줬었지만, 떡잎이 나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실패했구나'


생각이 들었고 기억에서 차츰 잊혀졌을 즘에 어느 순간엔가 파릇파릇한 떡잎을 틔우고 있었다.



이렇게 큼지막하게 자랄 줄 몰라, 당장에 화분을 3개 사서 각자 하나씩 옮겨주었다.



그렇게 21년 이 녀석들의 첫해 여름은 매우 생기로웠다. 이대로만 건강하게 자라 만주길 바랬지만, 날씨가 추워지며 겨울이 올 때가 되자 잎이 시들해지며 하나둘 지기 시작했고, 모든 잎들이 다 떨어져 나갔다.


죽은 것은 아닌듯 했다. 잠시 겨울잠을 자는 것이라 생각했다. 많은 나무들이 겨울이 되면 잎이 지니까 바오밥나무도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2022년 여름이 다가왔다.


22년은 무척이나 고군분투했던 해였다.


하고 있는 일에서 좀 더 성장하고 싶었고, 이런저런 직무 관련하여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며 야근도 잦았다. 누군가는 상사한테 혹은 대표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러냐? 잘하고 싶은 마음은 칭찬받고 싶다는 욕구에서 비롯된 행동이다라고 하며 별 도움되지도 않는 말들을 해왔다. 직업적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의 기저에 타인의 인정욕구가 있다는 말이 참 낯설었다. 사회적 관계를 중시하는 사회이기에 나의 행동 기저에 타인의 시선이 들어가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질문일 테지만, 나는 그저 내가 하는 일을 좀 더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그러니까 프로다운 모습을 갖추고 싶었다. 타인의 인정이 아닌 돈 받는 이상 내가 할 일은 해야 한다는 제 몫을 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뭐 이것마저 타인의 인정욕구다라고 말한다면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그렇군요. 당신 말이 맞아요. 저도 사회적 인간인 이상 타인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요. 인정합니다.'


라고 말할 수밖에...


아무튼 그렇게 바쁜 일상을 매일매일 보내면서 바오밥나무들에 물을 주는 것을 까먹게 되었다. 그냥 햇빛 잘 드는 곳에 두고 방치했었다. 그런데도 놀랍게도 이 녀석들은 잎을 틔우기 시작했다.



첫 해에 떡잎을 틔웠던 순간과는 참 다른 기분이었다.


뭐랄까... 가슴속에 감동이 꽉 차오른다는 말을 내가 느끼고 있었다. 22년에 성장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생각만큼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답답하던 마음에 위로를 한 껏 받았다. 저 두꺼운 줄기를 뚫고 잎을 틔웠다는 이들의 강인함에 다시 힘내서 무더운 여름을 보낼 수 있었다.



2024년 덥디더운 여름이 시작되었다.


2023년의 바오밥은 어디 갔냐고??


결과적으로 2023년은 실패했다.


여전히 나는 직업적 성장을 위한 노력을 했다. 사람들의 말은 달라졌다. 워크홀릭 같은 나의 삶은 동료들에게 방해가 되었던 것 같다. 나의 일하는 태도와 방식은 워라밸을 구축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방해가 되었고 내가 분위기를 흩트리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했다. 그렇게 해봤자 대표는 알아주지 않아. 회사는 너 없이도 잘 돌아가... 그렇게 일하다 번아웃 돼버려. 일을 효율적으로 잘하기 위해 워라밸이 필요한 거야.


'그렇다. 맞는 말이다.'


그런 맞는 말인 사실을 기반으로 전해져 오는 온갖 걱정 어린 말들과 일관성 없는 비판과 합리성이라는 가면을 쓴 꼬투리 잡는 대화와 자기 방어를 위한 타인에 대한 무시들 사이에 끼어 버렸다. 타인에 대한 판단에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사실만 있으면 되었다.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나의 불안은 커져갔고 예민하고 민감해지고 이는 결국 화살이 되어 나 역시 타인에게로 향하게 되어 버렸다. 회사 사람들이 원하는 나의 모습과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나의 모습은 달랐고 그들이 원하는 모습대로 행동할 것이냐 말겠냐의 기로에 서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었던 터전을 버리고 떠나기로 결심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니까... 후회하진 않는다. 그저 아직은 하고 싶은 일의 비중을 더 키우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에서 선택한 것이니까. 그곳은 더 이상 그럴 수 없는 곳이었으니까.


그래서 2023년의 바오밥은 어디 갔냐고??


나 살기 바빠 그깟 사진 한 장도 찍지 못했다. 그때에도 바오밥나무는 잎을 틔웠다. 그리고 22년도와는 다르게 감동이 밀려오진 않았다. 그냥 오랫동안 앉아서 멍하게 바라만 보았다. 어떻게 너희들은 그 추운 겨울을 버티고 봄이 지나 두꺼운 줄기를 뚫고 다시 잎을 틔울 수 있는 거지? 더군다나 올해는 내가 너희들을 잘 챙겨주지 못했는데 말이야. 누가 뭐라 하든 환경이 바뀌든지 너희들의 살고자 하는 의지와 여름이면 변함없이 잎을 틔우는 행동은 너무 올곧아서 다시 힘내야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23년 겨울에 또다시 잎은 모두 졌다.




24년은 새롭게 시작하는 해이다.


몇 달간 생활비는 벌어야 하니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그래도 키우고 싶은 역량의 직무를 할 수 있는 곳에서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했다.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면서 근무시간이 줄고, 딱 필요한 만큼만 벌고 있다.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불안은 여전히 저 심연 깊은 곳에서 자리 잡고 있지만,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조급함은 줄어들고 마음은 조금 평온해졌다. 또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은 많아 이것저것 일을 벌리고 하다가, 다시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차근차근 나아가고자 마음을 고쳐먹는다. 오랫동안 나아갈 일이면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제일 중요할 테니까 말이다. 그냥 그렇게 현재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하고 있는 것을 해 나가고, 밥 잘 먹고 잘 자는 것만으로도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지 않나 싶다.


그리고 몇 주전 더위가 찾아오며 바오밥나무들도 잎을 틔우기 시작했다.


잎이 졌다 틔웠다를 반복하며 신기하게도 줄기는 커져가고 가지들도 늘어난다.


무언가 새롭게 시작한다고 해서 다시 씨앗에서 싹을 틔우는 것이 아닐 테다. 실패했을지라도 나의 줄기는 좀 더 두껍고 단단해져 있을 것이고 이런저런 경험들로 갖가지 가지들을 가지게 되었을 테니,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여름을 만나 나에게도 잎이 무성히 필 순간이 찾아올 것이라 생각한다.


올해는 바오밥나무들에게 영양제도 주고 물도 잘 챙겨주려고 한다. 그러면서 나도 잘 챙겨줄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출근하러 밖을 나섰는데 익숙한 무언가가 눈에 보였다. 재작년 원룸 2층에서 살 때 햇빛을 더 잘 받게 하려고 창가에 올려둔 바오밥나무들이 떨어져 처참히 깨져있었다. 다행히 길가는 아니라 맞은 사람이 없었다. 빗자루를 가져와 흙을 쓸어 담고, 화분이 없어서 집에 쓰레기통에 흙을 부어 후다닥 바오밥나무들을 꽂았었다.


못난 주인 만나 너네가 고생이 많다.


다음 여름에도 그다음 여름에도, 여름이 사라지는 날까지 계속 같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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