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지지 않기 위해 휘어지는 삶에 대하여
간밤에 눈이 많이 왔다.
집 앞 나무들 위에 하얀 무게가 잔뜩 쌓여 있었다.
나는 문득 멈춰 서서 그 무게를 아무 말 없이 견디고 서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나무 의사’ 우종영의
나무에게서 배운 삶의 지혜를
아주 담백한 문장으로 풀어낸 에세이,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가 있다.
나무가 살아가기 위해
환경에 맞춰 스스로 줄기의 방향을 바꾸고
몸을 비틀어 자리를 확보하는 모습에 대한 이야기 등
나무에 대한 깊은 성찰의 이야기지만
나는 그것을 인생 이야기로 읽었다.
감동 깊게 읽고 난 후부터 나는 나무를 눈으로만 보며
그저 스쳐 지나가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큰 나무들의 생김새에 따라 스토리를 입히며 본다.
즉, 나무의 생김새가 특이하면
나무가 어떤 바람을 견디며 자랐는지,
어떤 상처를 통과했는지,
어떤 이유로 한쪽으로 몸을 기울였는지,
그 흔적을 상상해 보며 나무를 읽어보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눈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다.
사람의 마음처럼, 내려앉는 순간에는 조용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줄기를 휘게 만들 만큼 깊게 스며든다.
그런데도 나무들은 흔들리기만 할 뿐
쓰러지지 않는다.
기울어진다면 기울어진 대로 버티며
자기 방식으로 균형을 다시 찾는다.
삶이 내려놓는 무게를 다 털어낼 수 없을 때,
나는 늘 ‘무게를 이겨내야 한다’ 고만 생각했지만
나무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무게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무게와 함께 서서 환경에 적응하는 유연함을 보여준다.
삶도 결국 나무처럼 방향을 바꾼다
눈을 머금은 나무들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깨닫는다.
삶도 결국 나무와 닮아서,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눈이 쌓이면 그 무게를 견딜 수 있는 모양으로
조금씩 방향을 바꿔가며 살아간다는 것을.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우리도 그렇게 자신만의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다.
나무에는 툭 하고 꺾여 있는 부분도 있고
부드럽게 휘어진 선도 있다.
그 모든 모양은
나무가 지나온 바람의 기록이며 시간이 남긴 흔적이다.
그 곡선들은
한 번의 폭풍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없이 반복된 계절과
오래 버텨낸 시간의 누적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문득 사람도 나무처럼
시간이 만든 곡선을 따라 살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다.
처음에는 곧게 서 있다고 믿었지만
삶을 지나는 동안
부서지고,
껴안고,
기다리고,
다시 일어서며
어느새 내 몸과 마음에도
나만의 곡선이 생겼을 것이다.
그 곡선은
상처 때문에 생긴 흔적일 수도 있고,
사랑 때문에 생긴 부드러움일 수도 있고,
부득이하게 타협했던 방향 전환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곡선은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아주 소중한 흔적들이다.
시간은 우리를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완성시키는 조각가이기도 하니까.
누군가는
“인생의 굴곡”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요즘 그 단어보다
“인생의 곡선”이라는 표현이 훨씬 더 마음에 와닿고 아름다운 표현이라 생각한다.
굴곡은 흔히 실패나 위기를 떠올리게 하지만
곡선은 흐르고, 이어지고, 아름답게 돌아가는 길의 이미지가 있다.
우리는 곧게만 서 있으려고 애쓰지만
인생은 결국 곡선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 곡선은 실패의 자국이 아니라
살아내기 위해 선택한 가장 자연스러운 모양일 뿐이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쪽으로,
눈이 쌓이면 눈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쪽으로
나무가 몸을 살짝 틀 듯이
우리의 삶도 그렇게
부드럽고 사려 깊은 방향 전환을 통해 이어져 간다.
살아남기 위해 휘어진 것이 아니라,
살아 있기 때문에 그렇게 아름답게 휘어진 것이다.
그 곡선이 바로 인생이고,
그 곡선이 바로 나의 모양이다.
나도 지금에 와서야 조금 알게 되었다.
눈 속에서 버티는 나무의 휘어짐처럼,
인생에서 생긴 나의 곡선들은
내가 살아온 방식의 증거라는 것을.
시간이 내게 남긴 곡선들을 마주하여
천천히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아마 그것이
나이 듦이 주는 가장 조용한 선물일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떠올리다 보니
문득 몇 곡의 음악이 마음으로 흘러 들어왔다.
말보다 먼저 음악이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