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위에서

한강의 ‘흰’을 읽다, 흰 위에서 본 한 장면

by Mansongyee



오늘 아침,
한강의 ‘흰’을 읽었다.

“여덟 달 만의 조산이라 몸이 아주 작았지만,
눈·코·입이 또렷하고 예뻤다고 했다.
까만 눈을 뜨고
어머니의 얼굴 쪽을 바라보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 까만 눈에 눈을 맞추며
다시 중얼거렸다고 했다.
제발, 죽지 마.”

이 장면 앞에서
가슴이 따끔거리며 무너졌고
이유를 설명할 새도 없이
눈물이 먼저 나왔다.

이런 반응을
여전히 그대로 통과시키는 나를 보며
책을 잠시 덮고,
조금 어색한 표정으로 웃으며
자리를 바꾼다.


밖이 보이는 쪽으로,
조금 숨을 돌리기 위해서.

밖이 보이는 유리벽 앞 테이블이 비어 있다.
그쪽으로 가면서
‘흰’.
‘희다’.
입 안에서 그 단어를 천천히 굴려본다.

한강이 말하는 ‘흰’은
지켜내고 싶어서 떨리는 색일까.
너무 작고 연약해서
기도처럼 마음을 붙잡게 되는 흰일까.

지금 내가 유리벽을 통해
마주하고 있는 흰 은 눈(snow)이다.

오늘의 바깥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주 맑다.
햇빛 아래 길 옆에는
눈이 화석처럼 쌓여 있고,
눈을 밀어낸 언 땅은
단단하게 다져져
미끈한 빛을 띤다.


그 위를
건물 밖으로 나가고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걷는다.


휠체어나 보행 보조가 필요한 이를 태운
이동 지원 차량이 도착한다.


차에서 내린 기사는
한 사람을 안전하게 내리게 한 뒤
그의 몸을 거의 끌어안듯 받쳐
미끄러운 길 위를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온다.

한강은 연약한 흰 것들을 통해
삶이 얼마나 쉽게 부서질 수 있는지,
그 부서짐을 견디는 일이
얼마나 오래 마음에 남는지를
조용히 남겨둔다.

내가 보고 있는 눈의 흰 은
아름답지만
조심하지 않으면 다치게 하는 색이다.


몸을 긴장시키고
사람의 자세를 바꾸게 만든다.


아름다움과 위험,
연약함과 보호가
같은 흰 바닥 위에 놓여 있다.

아마도 오늘의 눈물은
슬픔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 세계가 여전히
이렇게 조심스럽게 이어지는 속에서도
끝내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장면을
아직 내가 볼 수 있다는 데서
흘러나온 감정이었을 것이다.

흰 것은 늘 그렇듯,
지켜보는 쪽의 자세를 묻는다


흰 앞에서 지켜지는 것은 색이 아니라, 사람의 자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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