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의 감각은 아침이 되어서야 말이 되었다.
어젯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돌아서는데
빨간 물이 보였다.
이게 뭔가.
아, 이제 내 몸이 탈이 났구나.
침대에 누워
머릿속이 불편하게 회전했다.
이게 뭐지.
이번 추위의 견딤이 다르더니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만약 내 몸에 이상이 있다면
그럼 나는
무엇부터 정리해야 할까.
생각을 나열해 본다.
다른 일들은 인연대로 가면 된다.
하지만 두 달 뒤,
딸이 둘째를 출산한다.
맨체스터로 가야 한다.
이건 꼭 해야 하는 일이다.
이것만 마치고 나면
그다음은 인연대로 해도 된다.
그래서 남편에게는
말하지 않기로 한다.
병원에 가면
혹시라도 딸에게 가지 못할지 모르니까.
눈물겨운 계산이었다.
두 번째 화장실에 갔을 때
색은 조금 옅어졌다.
그래도
깨끗하진 않았다.
탈이 났네.
아침밥을 먹다
남편이 툭 던지듯 말한다.
“비트가 변까지 빨갛게 하더라.”
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딸이 출산을 하는데,
원래 없던 엄마였다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비행기 표까지 끊어 두고
못 오는 형편이라면
그 아이는 얼마나 슬플까.
어젯밤 내내
그 생각만 했다.
몸이 먼저 알았고,
마음은 그다음에 따라왔다.
Note
비트를 고구마처럼 에어프라이어에 구웠다.
색은 오히려 더 깊어졌고,
뿌리 식물 특유의 묵묵함이
깊어진 단맛과 묘하게 겹친다.
—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