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프라이어 앞에서 배운 삶의 농익음과 담백함
살다 보면
입보다
몸이 먼저 선택하는 음식이 있다.
요즘 나에게는
그런 조합 하나가 생겼다.
얼마 전 마켓에서
일본 품종 고구마를 사 왔다.
평소 고구마의 퍽퍽함을 좋아하지 않아
장바구니에 담는 일이 드물었다.
큰 기대는 없었다.
에어프라이어에 구워
한입 먹어 보았다.
뜻밖이었다.
달콤하면서 부드러웠다.
처음 만나는 맛 같았다.
다음 날
우유 한 병을 사 왔다.
고단백, 저지방, 무설탕, 유당 제거.
표지에 적힌 문구를 한참 살피다
조용히 장바구니에 담았다.
우유는 늘
몸을 조금 더부룩하게 했기에
잘 찾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몸이 우유를 찾고 있다.
고구마와 우유를 함께 먹었다.
한 입, 한 모금.
별것 아닌 조합인데
마음이 편안해졌다.
맛보다
몸이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뒤
고구마를 조금 더 오래 구웠다.
촉촉하고 꿀처럼 달아졌다.
디저트 같은 맛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내 취향은 여전히
포슬한 밤고구마라는 것을.
신기하게도
고구마는 몇 분 차이로
성격이 달라진다.
조금 덜 익은 자리엔 청춘의 아삭함이 있고,
조금 더 머문 자리엔 황혼의 농익음이 배어 있다.
삶도 그러하다.
어떤 날은
달콤한 위로가 필요하고
어떤 날은
조용한 담백함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날의 마음이 고르는 맛으로
하루를 건너간다.
오늘, 나는 결국
포슬한 고구마를 고른다.
생각해 보면
사람과의 인연도 닮아 있다.
모든 만남이 달콤할 필요는 없다.
조용히 오래 머무는 편안함이
더 깊게 남는 경우도 있다.
식탁 위를 바라본다.
나와 우유와 고구마.
몸이 원해서 시작된 조합이
어느새
조용한 균형을 만들고 있다.
이 평범한 조화를
누군가는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요즘 나는
에어프라이어 앞에서
그걸 배운다.
고구마 하나에도
시절 인연이 있다는 것을.
어떤 날은
조금 덜 익은 시간이 좋고
어떤 날은
조금 더 머문 시간이 좋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포슬한 시간을
조금 더 좋아하는 시절을 지나고 있다.
세상은 이미 알고 있었을지 몰라도
내 몸은
이제야 알았다.
늦게 알았다는 사실보다
지금 알았다는 일이
나는 더 좋다.
몸이 원해서 만난 것들은
대개 시절이 데려다 놓은 인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