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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최대한 간단하게 정리해 드립니다(21).

1920년대 평화의 시대? 전간기?

1920년부터 1933년까지를 세계사에서는 평화의 시대 또는 전간기(interwar period)라고 부릅니다. 이런 명칭이 나오게 된 것은 평화를 위한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공했느냐 아니면 실패했느냐라는 견해의 차이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사이에서 어렵사리 평화를 유지했던 점이 의미를 부여했다면 평화의 시대라고 부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전간기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 시기는 다음 전쟁을 준비하는 시기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제2차 세계 대전을 막지 못한 시대이니까요. 그렇다면 왜 이런 견해차가 등장했는지 알아보는 것이 이번 글의 핵심입니다.

ChatGPT Image 2025년 7월 23일 오후 05_49_43.png GPT가 제글을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한 그림이라고 합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나서 주로 유럽으로 구성된 강대국들은 파리에 모입니다. 전쟁으로 파괴된 세계 질서를 복구하고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영국, 프랑스, 미국을 비롯한 1차 대전의 승전국들은 겉보기에는 평화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특히 미국의 대통이었던 우드로 윌슨은 평화 14원칙을 제시하며 새로운 세계질서를 만들어가자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비밀외교의 금지, 전쟁의 금지, 전쟁을 막기 위한 전지구적인 공동체를 구성하자는 생각이 들어 있었습니다. 윌슨의 이상은 높았고 평화에 대한 갈망은 강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특히나 전쟁의 승전국이었던 프랑스와 영국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당시 영국의 수상이었던 로이드 조지와 프랑스의 총리였던 클레망소는 윌슨의 14개 조를 십계명에 빗대어 하나님도 우리에게 십계명을 주었는데 윌슨은 우리에게 그보다 더 가혹한 14개를 주었다며 비아냥 거리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승전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는 자신들의 이익 추구에 더욱 관심이 많았으며, 적국이었던 독일의 비무장화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들은 결국 독일에게 매우 가혹했던 베르사유 조약으로 나타났습니다.


독일은 모든 식민지를 포기해야만 했고, 과거 프랑스로부터 빼앗은 영토도 돌려주어야 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야 했으며, 군대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이로 인해 독일 경제는 완전히 파탄지경에 이르렀으며, 실업률은 급속도로 치솟았습니다. 게다가 독일의 유명한 산업 지역이었던 루르 마저 프랑스군이 점령하였습니다. 독일의 배상금을 받아내기 위한 담보였던 셈이죠.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역시 비슷한 운명을 맞았습니다. 제국은 해체되었고, 넓은 영토는 모두 동유럽의 여러 나라로 분리되어 버렸습니다. 과거 제국의 영광은 사라졌고 이제 초라한 오스트리아라는 작은 국가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서아시아, 동유럽, 이집트에 걸쳐있던 영토를 거의 다 빼앗기고 소아시아 지역의 작은 국가로 전락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혁명이 발생하여 터기 공화국으로 이름을 변경하였습니다. 한마디로 패전국의 운명은 잔혹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의 목적에는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평화를 위한 노력은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의 창설로 본격화됩니다. 미국의 제안으로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들 중심으로 전지구적 협력체가 탄생하게 됩니다.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승전국이었던 일본까지 여기에 참여하면서 국제 연맹은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당사국이었던 미국이 국회와 행정부의 대립으로 인하여 결국 가입하지 않게 되면서 그 영향력이 급속도로 줄어들게 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전쟁 당사자였던 독일의 가입도 처음에는 허락되지 않았고 러시아는 심지어 소련이라는 사회주의 정부로 변경되면서 세계적인 '왕따'로 전락해 가입이 거절되었습니다. 이름은 국제연맹이었지만, 까다로운 가입 절차와 미국의 불참 그리고 결정적으로 규약을 어기는 행위에 대해서 별다른 제재 수단이 없다는 점은 이후에 제2차 세계 대전을 막지 못한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합니다. 그래도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전 세계적인 국제 공조의 중요한 첫걸음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평화를 위한 노력은 그 외에도 여러 각지에서 전개됩니다. 여성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지면서 여성 참정권 운동과 전 세계적인 반전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과도한 군비 경쟁을 막기 위해 1922년에는 워싱턴에서 세계 군축회담이 전개되어 각국의 무리한 군비경쟁에 제동을 걸고자 합니다. 또한 켈로그-브리앙 조약이라고 불리는 부전조약도 체결됩니다. 이 조약은 전쟁을 외교의 수단으로 삼지 않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미국과 프랑스의 외무장관의 주도로 체결된 이 조약은 점차 가입국이 확대되면서 전 세계적인 평화의 물결에 큰 기여를 합니다. 독일도 여기에 가입국이 되면서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더욱이 독일에게 부과되었던 과도한 배상금도 미국의 제안으로 점차 삭감되면서 독일 경제를 목졸랐던 압박도 점차 완화됩니다.


이처럼 1000만 명의 사상자를 낳았던 제1차 세계 대전의 상처는 192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점차 아물어갑니다. 한편에서는 강대국들끼리의 군비경쟁이 있기도 했지만, 그래도 세계의 주요 흐름은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방향으로 조금씩 진전되고 있었습니다. 물론 1922년에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리니가 파시스트당을 이끌고 정권을 장악하여 파시즘 정권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러시아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USSR)으로 바뀌어 새로운 사회주의 실험을 추진하며 전 지구적 흐름에서 한발 뒤떨어져 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불안요소일 뿐, 평화를 직접적으로 위협하진 않았습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은 1920년대를 광란의 20년(Roaring Twenties)으로 지칭하기도 합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대량소비사회, 대중문화의 발달(재즈 등), 민주주의 발전 등이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의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을 바라보면서 평화의 시대, 전간기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적어도 1920년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은 본인들이 살았던 시대를 즐겁게 여기고 있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글쓴이의 견해지만, 202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지금이 후세에 어떻게 불릴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의 시기가 제2차 세계 대전과 제3차 세계 대전의 중간 지점인 '전간기'인지 아니면 평화와 번영의 시기인지는 다음 세대만이 알 뿐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1920년대에 관한 여러 세계의 흐름을 정리하면서 드는 바람은 지금의 평화가 좀 더 유지되길 기원합니다.


1920년대에 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그 분량을 다 소화하지는 못해 이렇게 정리해 봅니다. 많이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주제는 경제대공황화 전체주의 또는 파시즘, 나치즘이라는 주제로 전개할까 합니다. 오랜만의 연재네요. 구독자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다음에는 더 좋은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ChatGPT Image 2025년 7월 23일 오후 05_44_09.png GPT가 생성한 1920년대 세계 지도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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