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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최대한 간단하게 정리해 드립니다(19).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1800년대 세계의 역사는 유럽을 중심으로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유럽중심주의(Eurocentrism)이라고 비판해도 유럽이 지금의 현대 세계에 크게 기여한 점은 사실이니까요.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에 성공한 유럽 국가들은 새로운 국가 형태를 만듭니다. 바로 민족국가(nation-state)입니다. 네이션을 국민이라고 번역하기도 하여 국민국가라고도 부릅니다. 이 국가 형태가 중요한 이유는 오늘날 전 세계의 대부분의 국가가 민족국가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근대시기까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던 지역 공동체는 이제 국가라는 범위 안에 응집되기 시작합니다. 국가는 국민을 양성하고 충성심과 단결력을 확보하기 위해 교육과 징병제를 활용합니다. 또한 국가 구성원의 단결을 위하여 신분제를 폐지하고 법 앞에 평등을 내세웁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프랑스혁명에서 봤던 것처럼 국가는 이제 모든 구성원의 충성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아키텐느, 노르망디, 부르고뉴 등 의 사람들이 이제는 모두 '프랑스인'으로 자신을 여기기 시작합니다. 이런 강력한 영향력으로 주변국과의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산업혁명으로 인해 폭발한 원료의 수요와 시장에 대한 욕구는 유럽의 시선을 아프리카와 아시아로 돌리게 합니다. 식민지는 이제 유럽국가들의 번영을 상징하고 담보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원료를 얻고 상품을 팔 수 있는 시장의 존재는 국가경제 발전의 중추였습니다. 게다가 본국 내에서 발생한 인구과잉으로 인한 사회 문제를 식민지 획득으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많은 식민지를 확보하면서 문화적 우위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식민지 획득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18~20세기에 걸쳐 자국의 경제적, 정치적 이득을 위하여 타국을 침략하여 지배하는 행태를 제국주의(imperialism)라고 칭하기 시작했습니다.

1900년의 세계지도(제국주의 시대: 출처는 오른쪽아래 태그 참조)

제국주의의 선두주자는 단연 영국과 프랑스였습니다. 신항로 개척에 앞장섰던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네덜란드를 물리친 영국과 프랑스는 이미 1700년대부터 전 세계에 식민지를 보유하였습니다. 영국은 아메리카는 물론이고 아프리카를 적극적으로 점령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에즈 운하 건설을 계기로 영국은 이집트를 점령하였고 지금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을 거점 삼아 남북으로 세력을 확장하였습니다. 인도는 이미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하기 직전이었습니다. 무굴제국의 혼란을 틈타 진출한 영국은 인도에게서 면과 차를 비롯한 여러 가지 자원을 수탈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도 영국에 질세라 식민지를 확보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를 포기한 프랑스는 일찍부터 아프리카로 진출하였습니다. 특히나 알제리는 프랑스가 일찍이 눈독을 들이고 진출하기 시작한 곳이었습니다. 영국이 남북으로 아프리카를 분할했다면 프랑스는 동서로 아프리카로 분할하려고 했습니다. 이런 두 세력의 진출은 파쇼다에서 충돌을 유발하기도 했지만, 양국의 협상과 프랑스의 철수로 세력 균형을 유지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충돌은 이후의 식민지 경쟁 충돌을 예고하는 전초전이었습니다.


뒤늦게 산업혁명과 민족국가 형성에 성공한 독일과 러시아도 여기에 가세했습니다. 독일은 우수한 공업력과 강력한 군사력으로 이미 유럽에서 프랑스를 꺾은 전례가(프랑스, 프로이센 전쟁) 있었습니다. 적극적으로 식민지를 확보하려는 독일 앞에 프랑스와 영국은 과거의 원한을 접고 서로 단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두고 유럽 외교사에서 '코페르니쿠스적 변화(획기적 변화)'가 일어났다고 부르기도 합니다. 러시아는 유럽의 변방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표트르 대제의 개혁 이후, 러시아는 기지개를 켜기 시작합니다. 러시아의 목표는 유럽의 강국으로 인정받는 것과 부동항(겨울에도 얼어붙지 않는 항구)의 확보였습니다. 이런 러시아의 방침은 지금까지도 유지됩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태평양까지 진출하였으며(한국의 바로 코앞까지 와서 블라디보스토크를 건설합니다 그 뜻은 동방을 정복하라입니다), 유럽으로 남하를 시작합니다. 러시아의 남하 역시, 영국과 프랑스의 경계심을 자극했고 이는 베를린 회의에서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려는 시도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유럽의 이런 침략 앞에 과거 강력했던 오스만 제국은 제대로 된 저항을 할 수 없었습니다. 과거의 강력한 오스만 제국은 유럽의 환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거리상으로 멀었던 동아시아는 180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 침략을 받기 시작합니다. 처음의 목표는 중국이었습니다. 당시 강력한 청 제국은 오랜 평화로 인해 과거의 강력한 군사력을 점점 상실하고 있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도 처음에는 청을 엄청나게 경계했습니다. 그러나 제1차 아편전쟁 이후, 영국과 프랑스는 중국을 종이호랑이 또는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는 중국을 완전히 점령하지는 못합니다. 인구도 영토도 너무 넓은 나머지 식민지 점령이 어려웠습니다. 저항도 매우 거세었기에 영국과 프랑스는 거점을 중심으로 중국으로 진출하여 부분적으로만 영향을 행사했습니다. 특히 프랑스는 영국과의 충돌을 피해 동남아시아 지역을 점령하기 시작합니다. 지금의 베트남과 라오스 캄보디아 등을 점령하여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연방을 조직합니다.


여기에 더해 뒤늦게 등장한 미국 역시 남북전쟁의 혼란을 수습하고 식민지 경쟁에 참여하기 시작합니다. 미국은 함대를 조직하여 중남미 아메리카를 장악하고 동아시아 진출을 위한 거점으로 일본을 선택합니다.

이렇게 세계는 유럽에 의해 침략을 당하면서 반강제로 세계화 대열에 합류합니다. 결국 1900년대 세계는 원하든 원치않든 자발적 또는 강제적인 수단에 의해서 식민지화가 완료됩니다. 지구상에서 유럽을 제외하고 식민지를 경험해보지 않은 나라는 당시로서는 라이베리아, 에티오피아, 태국 정도였습니다. 침략과정에서 무수한 희생이 뒤따랐지만 세계화는 한 걸음 더 진전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미래 앞에는 세계대전이라는 어두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음 글의 주제는 제1차 세계대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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