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
이번 글의 주제는 제1차 세계대전입니다. 1차 대전은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1900년대까지 이어졌던 제국주의 국가 간 갈등을 끝내려는 의도를 담아 그렇게 불렀습니다. 실제로 이후의 역사 흐름을 살펴보면, 이런 표현은 꽤나 정확한 표현입니다. 제국주의 질서와 세계정세를 변화시킨 것은 맞으니까요. 그러면서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었습니다. 바로 현대사(Contemporary history)의 문을요.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현대사의 문을 열어젖힌 것일까요? 이번 글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무엇을 끝내고 무엇을 시작하였는지를 중점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세계대전의 배경입니다. 흔히 제1차 세계대전의 배경은 발칸반도(지금의 동유럽 지역)의 범슬라브주의와 범 게르만주의의 대립, 3국 동맹과 3국 협상국의 갈등, 사라예보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당시 발칸반도는 여러 민족들과 종족, 종교 갈등으로 인해 이미 수차례 전쟁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오스만 튀르크(지금의 튀르키예 공화국) 제국이 힘이 약화되면서 동유럽에 대한 주도권이 약해지자, 유럽 국가 특히 러시아는 이슬람의 억압으로부터 동유럽의 그리스 정교를 구원한다는 명목으로 남하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많은 국가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루마니아, 불가리아, 세르비아 등이 그런 나라입니다. 문제는 갑작스러운 국가들의 등장과 국경선의 확정으로 인해 각 민족 또는 종교 간의 경계가 뒤섞여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전까지 오스만 튀르크라는 하나의 제국 안에서 이제 여러 개의 공동체로 나뉜 발칸반도 지역은 이슬람교와 그리스 정교, 가톨릭교, 종족 분쟁 등으로 분쟁이 수시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이런 흐름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바로 이런 점을 활용하여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한셈이죠.
독일도 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독일은 적극적으로 식민지 획득에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특히 오스트리아와 연합하여 발칸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시도했죠. 러시아의 영향력이 발칸반도에서 점점 커지는 것을 독일과 오스트리아도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오스만 튀르크 제국에 접근하여 러시아를 저지하려고 했었습니다. 역시나 명분은 독일과 혈통을 같이하는 게르만인들을 보호한다는 이유였습니다. 특히 독일은 당시 3B 정책이라고 불리는 베를린, 비잔티움(이스탄불), 바그다드로 이어지는 철도라인을 구축하여 서아시아로의 진출까지도 노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독일의 행보에 발맞추어 오스만 튀르크 역시 점점 더 독일에 의존하게 됩니다. 특히 러시아를 막기 위한 대안으로 독일은 매우 유용한 카드였습니다.
동유럽의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는 와중에 서유럽의 상황도 극단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독일은 통일과정(프랑스 프로이센 전쟁)에서 이미 프랑스와 싸워 이긴 전례가 있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독일과 프랑스는 원수가 되었고 이런 외교 관계의 변화는 과거 오랜 숙적이었던 영국과 프랑스를 손잡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당시 독일황제였던 빌헬름 2세의 팽창정책은 영국과 프랑스를 매우 불쾌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신들의 식민지와 해양패권에 대한 위협이 그 이유였습니다. 독일의 이런 강경 외교정책은 결국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를 손잡게 만들었습니다. 3국 협상의 탄생이었습니다. 진작부터 독일을 중심으로 형성된 3국 동맹(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에 대항하기 위한 새로운 방어동맹의 등장이었습니다.
언제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던 시간의 흐름 속에서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스트리아 황태자 페르디난트 대공이 암살당하면서 전 세계는 전쟁에 휩싸입니다. 발칸반도에서 세력을 확장 중인 오스트리아를 향한 분노가 세르비아 국민에게까지 전파되어 발생한 사라예보 사건은 곧장 세르비아와 오스트리아의 선전포고로 이어집니다. 곧이어 러시아가 프랑스, 독일이 상호 간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유럽은 전시체제로 들어갑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국가의 국민 모두 전쟁을 원했습니다. 승리를 예견하며 각국은 전쟁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초반 독일의 기세등등한 진격은 프랑스의 방어에 막혔고 엄청난 병력을 동원한 러시아는 독일 군대의 철벽 같은 방어에 발이 묶였습니다. 기관총과 같이 고도로 발달된 살상무기 앞에 전선은 불과 몇 미터를 사이에 두고 공방전을 벌이는 참호전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전장의 군인들은 온종일 끊임없이 쏟아지는 포격과 기관총의 총탄 앞에서 자신의 목숨을 담보 삼아 하루를 버텨야 했습니다. 금방 끝날 것 같았던 전쟁은 무려 3년을 끌었습니다. 각국은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독일은 영국에 의해 해상 경로가 봉쇄당하면서 자원부족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영국 역시 오스만 튀르크를 공격하여 전황을 뒤집고자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군대(ANZAC)를 전선에 투입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인들도 전쟁에 반강제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한 예로 인도는 100만 명의 군대를 유럽전선에 파견했었습니다.
3년을 끌었던 전쟁은 1917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이 무렵, 러시아에서는 오랜 전쟁에 지친 국민들과 사회주의의 영향으로 혁명이 발생하게 됩니다. 혁명을 주도한 레닌은 독일과 단독으로 강화조약을 맺으면서 전쟁에서 빠지게 됩니다. 독일에게 상황은 유리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참전하면서 독일은 패배하게 됩니다.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인해 여객선이 침몰당하자,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 편으로 참전하게 됩니다. 미국은 게임 체인저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게 됩니다. 독일은 불리해진 전황에 이어 병사들의 반란으로 결국 황제가 스스로 물러나면서 항복하게 됩니다. 같은 편이었던 오스트리아와 오스만 튀르크는 진작에 항복했었습니다(이탈리아는 전쟁이 발발하자 영국과 프랑스 편으로 참전합니다).
전쟁은 1918년에 끝나게 됩니다. 사상자가 무려 천만명을 넘었던 세계 최초의 세계 대전은 이렇게 큰 비극을 남기고 끝나게 됩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측면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전 세계는 이제 평화에 대한 염원을 전지구적으로 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전쟁터에 나가있던 남성들을 대신하여 공장과 후방에서 활약한 여성들의 기여가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여성들이 1차 세계 대전을 기점으로 사회로 적극진출하였고 연이어 참정권을 획득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큰 흐름에서 보면, 2차 세계 대전이 아직 남았습니다. 그러나 전지구적인 평화의 물결, 여성해방 그리고 식민지 해방의 물결은 1차 세계 대전이 끝나면서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세계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한 전쟁'은 '모든 것을 끝내고 새로운 것을 시작한 전쟁'이라고 고쳐 불러도 괜찮아 보입니다.
다음 장에서는 1920년대, 전쟁과 전쟁 사이의 시기를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