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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최대한 간단하게 정리해 드립니다(17).

혁명의 시대 2(시민혁명)

지난 글이 생각의 혁명이었다면, 오늘은 정치 및 사회구조를 바꾼 시민혁명을 다룹니다. 흔히 시민혁명이라고 하면, 권위적이거나 왕정 또는 불평등한 신분 체계에서 평등한 시민들이 통치하는 정치 형태로 넘어간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절반만 맞는 말입니다. 맞는 점은 시민혁명을 통해 사람들은 평등한 사회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누구까지를 사람 또는 시민으로 인정할지에 대해 각자의 의견이 달랐다는 점입니다. 오늘날의 시민 범위는 매우 넓어진 편이지만, 과거에는 매우 좁았습니다. 가령 프랑스에서는 성인 남자 그리고 세금을 내는 사람들만 시민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지금과는 많이 다르죠. 그럼에도 시민혁명은 이제 태어나면서 바꿀 수 없는 요소들을 가지고 사람의 삶을 결정하는 사회에서 노력에 의해 바꿀 수 있는 요소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사회로 넘어갔다는 점에서 상당히 큰 진보였습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미국 혁명

최초의 시민혁명을 무엇으로 볼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미국 혁명을 그 시작점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그렇다면 미국 혁명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요? 여러 가지 원인이 제기됩니다. 영국의 식민지 개척과 아메리카 대륙의 자유로운 분위기, 평등사상의 전파, 영국 정부의 세금 부과 등. 저는 그전까지 강조하지 않았던 새로운 출발점에서 시작해 보겠습니다.


7년 전쟁(Seven Years' War)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7년 전쟁은 1756년부터 1763년까지 벌어진 국제 전이었습니다. 전쟁의 오래된 원인은 프로이센(현재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세력 다툼이었지만, 실제 주인공은 영국과 프랑스였습니다. 북아메리카의 무역 주도권을 둘러싸고 두 국가는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그러다 결국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이 전쟁에 별로 주목하지 않았지만, 두 국가의 전쟁은 필리핀, 인도, 북아메리카, 유럽 등 각지에서 벌어졌습니다. 이를 두고 영국의 수상 처칠은 최초의 세계대전(First World War)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습니다. 이 전쟁이 중요한 이유는 그전까지 식민지에 별다르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유럽국가들이 본격적으로 식민지 경영에 직접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점점 국제무대에서 유럽의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tumblr_cac611cbda151c6c48b6663330e7071f_b37f8b8d_1280.jpg 7년 전쟁의 주요 전장, 유럽뿐만 아메리카, 인도, 필리핀도 포함되어 있었다, 출처: https://mapsontheweb.zoom-maps.com)

전쟁 승리로 영국은 엄청난 영토를 손에 넣었습니다. 실제로 캐나다 전체를 영국이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전쟁으로 인해 영국의 빚도 같이 늘어난 것이었습니다. 이는 영국이 자국 식민지에 세금을 부과하는 원인이 됩니다. 당연히 아메리카 대륙 내 영국인들은 여기에 반발하여 저항합니다. 미국 독립 전쟁이 이때부터 시작됩니다. 영국은 적극적으로 군대를 보내어 식민지를 지키려 합니다. 그러나 과거 7년 전쟁에서 패배했던 프랑스와 에스파냐 등의 지원으로 결국 영국이 미국에 패배합니다. 그 결과, 영국은 현재의 미국 동부지역의 독립을 승인합니다. 아메리카 합중국(USA)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17652.png 미국 독립 혁명의 당시 아메리카 동부의 인구 분포와 영역(출처: 세계사 백과)

미국은 자신들의 정치체제를 색다르게 고릅니다. 왕정으로부터 벗어났기에 왕정을 채택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공화정을 만들었고 자신의 헌법을 만들어 당시 유럽에서 유행 중이었던 자유평등사상을 적극 반영합니다. 이것이 미국의 헌법이 된 것입니다. 초창기의 미국은 상당히 힘이 약했고 주변국에 여러 차례 굴욕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왕이 없는 민주주의를 채택한 나라라는 개념은 점차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가 하나의 국가 표준으로 자리 잡습니다. 그리고 이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요. 바로 이점이 미국 혁명을 최초의 시민혁명으로 여기는 지점입니다.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미국 혁명의 영향력은 엄밀히 말하면, 당시에는 그렇게 크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은 달랐습니다. 프랑스 대혁명(France Great Revolution)이라는 명사도 있을 정도니까요. 프랑스 대혁명은 유럽의 정치지형을 완전히 바꿔놓을 정도로 강력한 파급력을 지닙니다. 심지어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멀리 떨어진 1900년대의 국가들도 프랑스 대혁명을 모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은 자기네 나라의 현대사를 프랑스혁명부터 시작하기도 합니다.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프랑스혁명을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프랑스혁명의 원인에도 엄청나게 많은 원인이 있습니다. 계몽사상의 영향, 미국 혁명의 영향, 경제적 위기, 프랑스 국왕의 무능 등. 그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경제적 위기였습니다. 지속적인 전쟁 및 패배로 1700년대부터 프랑스 재정은 파탄 직전이었습니다. 이는 프랑스의 신분중심 의회 소집을 유발했습니다. 당연히 귀족들은 세금을 내려고 하지 않았고 이는 결국 민중봉기로 이어졌습니다. 의회를 장악한 민중은 그 유명한 프랑스 인권선언(인간과 시민에 관한 권리선언)을 통해 신분제를 폐지하고 새로운 국가를 만들려고 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프랑스혁명은 국가 내 정치혁명 정도였습니다.


변수는 인접국가의 개입이었습니다. 이웃나라였던 프로이센(지금의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프랑스의 혼란을 틈타 군대를 보내었고 이는 프랑스 인들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여기에 더해 국왕의 도피와 지속적인 프랑스의 패배는 시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습니다. 공포는 프랑스인들을 단결시켰고 엄청난 힘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기적적인 승리로 프랑스는 다시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이때 싸우면서 불렀던 노래가 오늘날 프랑스의 국가(라 마르세예즈)가 되었습니다. 점차 힘을 회복하기 시작한 프랑스는 곧이어 정치적 혼란을 수습하고 유럽 내 강력한 국가로 다시 태어납니다. 특히 이런 혼란 속에서 활약한 이가 바로 나폴레옹이었습니다.

qmg-eur-w12-q01.png 나폴레옹이 새롭게 바꾼 유럽의 지형(유럽 전체를 석권하였다)


나폴레옹은 프랑스에 영광을 가져다줍니다. 수 차례의 승리와 전리품은 프랑스인들에게 나폴레옹을 지지하게 만드는 요인이었습니다. 그의 쿠데타와 독재, 황제 취임은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유럽 전체를 상대로 나폴레옹은 승리를 거뒀고 프랑스에 위대한 시기를 맞이하게 해 줍니다. 이 과정에서 나폴레옹은 프랑스혁명의 가치, 자유와 평등을 유럽 각 지역에 퍼뜨려 나가기 시작합니다. 기존에 있었던 정치체제를 뒤흔들어 버린 것입니다. 물론 이런 나폴레옹에 대해 유럽 각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습니다. 힘을 합쳐 저항했고 결국 러시아 원정을 계기로 나폴레옹은 패배하여 그 시대는 막을 내립니다. 그러나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해 뿌리내린 자유와 평등에 대한 생각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항하기 시작하면서 단결했던 민중의 기억들은 이후의 1830년대의 자유에 대한 갈망과 평등한 개체들이 통치하는 국민국가 건설 운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정리해 보면, 미국 혁명과 프랑스혁명은 새로운 정치체제의 표본을 보여주고 전 세계에 퍼뜨린 그런 혁명이라서 의미가 있는 듯합니다. 이후에 있었던 국가들은 두 국가의 생각을 공유하려고 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색깔을 입히긴 합니다. 어찌 되었든 간에 두 혁명은 결국 오늘날 다수의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 자유 평등의 헌법 이념과 국민이 주권을 가지고 통치하는 국민국가라는 개념을 만든 중요한 사건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우리의 삶을 전면적으로 바꾼 산업혁명에 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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