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잔치는 왜 소문이 났을까?
잔치 - 기쁜 일이 있을 때에 음식을 차려 놓고 여러 사람이 모여 즐기는 일.
사전에 나온 잔치의 뜻풀이이다. 뜻풀이 중 '음식을 차려 놓고'라는 말이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던 어린 시절 우리 가족에게는 부담이었다.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1등을 해도 글짓기를 해서 상을 받아도 기쁘긴 하지만 저 '음식을 차려 놓고'에서 걸려 '여러 사람이 모여 즐기는 일'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는 말이 더 맞는 말인 듯하다. 딴짓하지 말고 공부만 하라는 부모님의 말을 이렇게나 잘 듣는 아들이 1등도 하고 상도 타오긴 했지만 주위에 자랑을 하면 한턱 제대로 내야 하기에 말없이 넘어가고 그런 날은 집에서 냉동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네 식구만의 조용한 자축 잔치를 하곤 했다. 사춘기 시절, 다 컸다고 생각해도 아직은 어렸던 나였기에 집안 사정을 이해한다고 하지만 섭섭한 마음도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리라.
기쁜 일이 있을 때 하는 것이 잔치라고는 하지만 나와 동생에게 잔칫날은 제사상이 있는 명절이었다. 의정부역에서 비둘기호를 타고 가던 여정은 의정부역에서 500원에 팔던 가락국수를 먹으며 시작되곤 했다. 국수 한 그릇을 동생과 서로 먹겠다고 싸워가며 먹고 낡은 비둘기호 열차를 타고 가다 보면 지금은 아파트촌이 되어있지만 슬레이트 지붕과 판잣집으로 가득 차 있던 덕정역에 도착했다. 그렇게 판자촌 안에 있는 큰집에 가면 어른들과 사촌형누나들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힘든 살림에도 손이 크셨던 큰어머니는 명절이 되면 다른 집 부럽지 않은 제사상을 차리신다고 하루 종일 음식을 하셨다. 온 식구가 모여 만두나 송편을 빚고 전을 부치고 탕국을 끓이고 나면 한 상 가득 제사상이 채워졌다. 제사상이지만 우리들에게는 잔치상이나 마찬가지였다. 온 식구가 한자리에 모였으니 얼마나 기쁘고 음식까지 차려 나눠먹으며 즐기니 명절은 우리 형제에게 곧 잔칫날이었다. 그렇게 일 년에 두 번, 설날과 추석은 맛있는 잔치상이 떠올라 항상 손꼽아 기다리는 설렘이 가득한 날이었다.
자식들이 성인이 되고, 부모님 세대들도 연세를 드시면서 어느 순간 친척 어른들의 환갑잔치 릴레이가 시작되었다. 독립을 하기도 했고 성인이 된 후 친척들과 왕래도 없었기에 친척 어른들 행사에는 딱히 갈 생각은 없었다. 뭐든지 품앗이니까 그러면 안 된다는 부모님 성화에 마지못해 갔던 외삼촌의 환갑잔치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사촌 형과 누나들이 크게 신경을 썼는지 큰 행사장에 잔치 음식도 뷔페로 차려있고 번쩍번쩍 조명에 트로트 음악이 쾅쾅 울리고 있었다. 다들 그 시끄러운 행사장에서 춤을 추고 음식을 먹고 끼리끼리 소리를 지르듯이 대화를 하고 있는데 잔칫날 며칠 전부터 아프셨다던 주인공 외삼촌은 커다란 잔치상 한가운데 힘없이 앉아계셨다. 누가 가서 축하한다고 하면 희미한 미소로 끄덕이시기만 할 뿐 잔치 내내 아무 말도 없으셨다. 행사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부모님께 이런 잔치를 하고 싶으시냐고 물었다. 힘없이 앉아 있던 오빠와 그걸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손님들을 본 어머니는 이런 잔치는 절대 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못을 박으셨고, 그 이후 부모님 환갑은 친척 분들만 식당으로 모셔 식사만 대접했고 칠순은 우리 가족끼리만 맛있는 식사를 하며 지냈다.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가 결혼식을 하고 아이를 낳아 돌잔치를 해서 갔을 때 내 주변에 있던 손님들은 오늘의 주인공들을 얼마나 축복해줘야 할지를 고민하고 기쁨을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축의금을 얼마를 해야 하나 하는 눈치싸움과 이 행사의 식사는 뷔페인가 아닌가 하는 물음이 거의 다였다. 심지어 뷔페가 아니라고 주인공들을 뒤에서 욕하는 것까지 들으며 이게 잔치가 맞는 건가 하는 회의감이 들 때도 있었다. 정말 주인공을 축하해 주러 가는 것인지 언젠가 다음 차례로 나에게 돌아올 경조사를 위한 얼굴도장인지 모를 참석이 기쁜 일이 있어 모여 즐기는 일이라는 잔치의 뜻을 희석시키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에 갔던 회사 직원의 결혼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혼식 자체를 보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식은 거의 보지 않고 식당으로 넘어가 '음식이 괜찮네', '식장이 새거라 좋네' 같은 결혼식장과 식당의 품평이 내 주위 거의 모든 테이블에서 주를 이루었다. 식장 가득 채워져 있던 예쁜 꽃들이나 버진로드 위에서의 신랑 신부의 모습 같은 것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저 뷔페 줄이 너무 길어서 음식 받는데 시간이 너무 걸린다 같은 불평에 결국 얼마 먹지 못하고 나와버렸다. 나오면서도 여기 식대가 일인당 얼마일까나 하는 주변 물음에 잔치라는 단어가 더 이상 기쁨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라 주인공의 역량을 평가하는 품평회로 바뀌었음을 느꼈다.
몇년 전, 쏭의 선배 아이의 돌잔치를 한다고 해서 같이 갔던 적이 있다.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시는 부부셨는데 그 돌잔치에 가서 너무나도 큰 감동을 받았다. 작은 행사장에 발디딜 틈 없이 수많은 손님들이 계셨다. 휠체어를 타고 오신 분들과 더불어 병원침대에 누워서 오신 분도 계셨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몰려 준비한 음식도 재료도 모두 떨어져 선배 부부는 멘붕에 빠져있었지만, 사람들은 모두 웃으며 어린 아기의 첫 번째 생일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미안해하며 어쩔 줄 몰라하는 선배에게 괜찮다고 축하한다고 말하고 나오는 길에 '이런 것이 바로 잔치지'라는 마음이 들었다. 순수하게 주인공을 축하해 주러 온 것인데 음식이 좀 없으면 어떠하리. 주인공도 기쁘고 나도 기쁘고 모인 이들도 기쁘면 잠깐 배고픔이 문제가 아니라 그날 하루가 기쁨으로 마음의 배가 부르기에 상관이 없으리라. 그렇게 축복받을 자격이 있게 살아오셨음이 부러웠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만 찾는 것이 아니라 왜 소문이 났는지 생각해 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