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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 일기-22. 딱밤

아픈건 싫으니까

by 선호

예전 글에서도 쓴 적이 있는데 아버지는 액션 영화를 좋아하셨다.


총을 쏘고 폭탄이 터지는 할리우드 영화보다는 의와 협을 중시하여 무술로 대결하는 '황비홍'이나 '영웅문' 같은 무협 영화나 성룡과 이연걸로 귀결되던 '폴리스 스토리', '이연걸의 보디가드' 같은 홍콩액션영화를 즐겨 보시곤 했다. 서양 배우로는 드물게 무술로 적을 처단하는 척 노리스나 스티븐 시걸의 영화들도 비디오로 빌려 같이 보곤 했다. 그 영화 속 주인공들의 화려한 액션을 보며 따라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실제로 나는 그걸 따라 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주위의 형제 사이는 형이 때리고 동생은 얻어맞으며 대들거나 복종하거나 하는 관계여서 보통은 해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동생을 상대로 한다고 하지만 네 살 어린 동생을 상대로 때리거나 괴롭히지는 않았다. 때리면 아프니까, 아픈 건 싫은 거니까 싫은 걸 동생이 하는 건 내가 더 싫으니까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동생은 그때 자기를 때리지 않았던 형을 신기해하곤 하며 존중해 준다. 말이 좀 다른 길로 가지만 어쨌든 액션영화를 보며 그 무술 동작을 머릿속에서 그려보기만 했지 실제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액션 합을 맞춘 영상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성룡영화 같은 경우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메이킹 영상을 보여줬는데 다치고 피나고 하는 것을 보며 따라 하면 안 되겠다고 다짐했던 어린이였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서 태어나 처음으로 싸움을 했다. 도시락을 먹던 점심시간에 케첩이 묻은 소시지를 들고 까불대다가 다른 친구 옷에 묻게 되었다. 당연히 친구는 화를 냈고 나는 사과를 했지만 화가 식지 않았던 친구가 내 멱살을 잡아 넘어뜨리며 싸움이 시작되었다. 밥 먹던 아이들이 순식간에 원으로 둘러싸 소리를 지르며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미안한 마음에 순순히 넘어지긴 했는데 그 짧은 순간동안 진짜 싸워야 하나 라는 망설임이 들었던 기억이다. 내 위에 올라타 욕을 하고 주먹을 휘둘러 몇 대 맞았을 때 나도 모르게 다리를 들어 친구 상체를 감아 돌렸다. 자세는 완전히 반대가 되었고 주변 친구들을 환호성이 내 머릿속을 채울 때 바닥에 깔린 친구의 눈과 마주쳤다. 공포였다. 자기가 두들겨 맞을까 하는 두려움이 가득 찬 눈을 마주한 순간 그냥 일어나서 다시 한번 사과했다. 우리를 둘러싼 아이들은 싸움이 이어가지지 않음에 실망한 야유를 보냈지만 친구도 아무 말 없이 일어나 사과를 받아주면서 끝이 났다. 그 이후로 따로 싸움을 할 일은 없었다.


질풍노도의 중학교 시절, 각지에서 신도시로 몰려왔던 청소년들은 누가 최고인가 하는 주제로 툭하면 몸의 대화를 하곤 했다. 누가 싸움을 잘하는 가는 관심이 없었지만 반에서 친했던 친구들과 항상 하던 장난은 누가 아프다고 먼저 말하는가였다. 팔뚝에 힘을 잔뜩 주면 서로 번갈아 가면서 주먹으로 때리고 아프다고 하면 지는 게임을 하곤 했다. 그냥 바보처럼 둘 혹은 세 명이 팔뚝도 때리고 로우킥으로 때리고 박치기로 때리고 하면서 낄낄대며 놀았다. 그때쯤부터 생기기 시작했던 진짜 싸움만 하고 다니던 소위 일진들은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진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 중3이 되었을 때 '안 아프다' 게임을 제일 잘하던 친구에게 일진 모임에 들어오라고 제의를 하는 당황스러운 일이 있었다. 만화책 '짱'이 그 시절 중학생들에게 바이블처럼 돌고 있었기에 그런 스카우트 제의는 뭔가 멋있는 일인 듯했지만, 범생이들의 시답잖은 놀이가 친구를 본격적으로 폭력의 길로 보내는 것 같아서 덜컥 겁이 나 제의를 거절하라고 설득했고 우리도 그 놀이를 다시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거절 후 이유 없이 걸리는 시비를 애써 피해 도망가다가 영화 속 성룡이 했던 액션 장면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몸이 움직여 시비를 걸던 일진을 넘어뜨렸다. 책상들과 함께 와장창 넘어진 일진 친구의 눈은 초등학교 때 봤던 친구의 눈과 비슷한 두려움이 보였다. 그래서 그냥 우리 좀 괴롭히지 말라고 울어버렸다. 진짜 싸움이 벌어졌으면 흠씬 두들겨 맞았을 테지만, 싸움을 걸어온 사람을 목을 걸어 책상에 던져놓고 진짜 너 때리면 죽을 것 같으니까 제발 그만하자고 눈물을 흘리는 내가 좀 사이코 같았나 보다. 그 이후 일진 무리들도 우리를 딱히 건드리지 않았다. 우리는 범생들이었으니까. 고등학교 때도 초반에 시비는 몇 번 있었지만 싸움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공부만 하는 범생이라 알아서 가만히 있으면 건드리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굴이 이래서 건들지 않은 건가 하는 짐작도 든다.


호은은 또래에 비해 유난히 말랐다.


지금은 안 그렇지만 쏭이 어렸을 때 본인도 말라깽이라고 했었고 어릴 적 사진을 봐도 보릿고개 지내던 아이들처럼 깡말라 딱 엄마를 닮음직 하다. 잔병이 많기도 했고 자라면서 계속 저체중을 유지했다. 입도 짧아서 밥도 많이 안 먹는 것을 억지로 먹이고 영양제도 먹여도 몸에 효율이 안 좋은 건지 살로 가지 않았다. 공부는 못해도 좋으니 건강만 하거라 라는 마음으로 축구교실도 보내고 했는데 2학년이 되었을 때 1학년 동생 몇 명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학교에서도 축구교실에서도 보던 아이였는데 종이인형 같이 나풀대는 한 살 위 형이 만만했던 모양이었다. 9살이긴 해도 자존심이 상해서 나와 쏭에게 말을 안 하다가 학교에서 다쳐 보건실에 갔다는 말과 그간 축구교실에서도 괴롭힘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 분기탱천하여 가해아이 부모를 만났다. 본인들도 몰랐다며 변명을 늘어놓을 때 '본인은 단순한 놀이고 재미있다고 해도 상대가 한 번이라도 싫다고 한다면 폭력입니다'라고 말을 했고 그 후 사과하는 모습에 재발방지를 약속받고 돌아와 적어도 무술 하나는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나는 태권도를 생각했지만, 호은 친구들이 다니고 쏭도 선택한 검도학원으로 결정되었다. 호은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4년여 동안 검도를 하고 있다. 검도 학원을 다니면서도 여기저기 치이는 사건이 많아 항상 걱정이었다. 그럴 때마다 놀이와 폭력의 차이를 상대방 부모에게 말을 하며 사과를 받곤 했다. 호은에게도 남자아이들이 과격하게 놀 수는 있겠지만 상대가 싫어하는 순간 그건 폭력이 된다고 항상 주지 시키려 노력했다.


며칠 전, 쏭에게 연락이 왔다. 도장에서 호은이 우산으로 장난을 치다가 세 살 어린 여자아이가 넘어졌고 사태파악 못한 호은이 또 장난으로 딱밤을 때려 혹이 났단다. 아이는 울고불고 난리가 났고 관장님께 혼이 났다고 집에서도 지도가 필요할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그동안 몇 년을 그렇게 이야기했고 세뇌에 가까울 정도로 교육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라는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일단 아이 부모님의 번호를 받아서 먼저 연락해 사과부터 하라고 쏭에게 말을 하고 집에서 기다렸다. 집에 돌아온 호은은 현관에서 신발을 벗으면서부터 잘못했다고 울기 시작했다. 호은도 쏭도 내가 어떻게 변할지 몰라 긴장한 눈을 봤을 때 예전 친구들의 눈빛이 생각났다.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받았던 체벌과 군대시절 당했던 폭력이 아무리 심했어도 맞으면 아프고 아픈 건 싫은 거고 내가 싫은 건 남도 싫은 것이기에 결코 타인을 때리지 않는다는 내 다짐을 너도 이어갔으면 한다고 호은에게 다시 한번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내 얼굴이 너무 무섭게 일그러져 있었기에 진정을 못하는 호은을 보며 되려 쏭이 너무 겁을 준다고 나를 질책했다. 상대 부모에게 사과전화를 하고 호은에게 반성문 대신 사과 편지를 써 전달하라고 말을 하며 그날 그렇게 넘어갔다. 그렇게 넘어간 며칠 내내 마음 한구석이 답답하다. 이번일에 대한 훈육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것이 나중에 또 문제가 될 것 같은 걱정이 계속 든다. 매번 피해자로 화를 내던 쏭도 가해자 부모가 되자 당황하여 안절부절못한 모습도 눈에 계속 밟힌다.


장난으로 한 딱밤이었겠지만 그 딱밤이 주먹으로 발차기로 바뀌진 않을까 질풍 같은 사춘기 입구에 들어선 6학년 아들 녀석을 보고 있는 내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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