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푸어푸어푸
나는 수영을 못한다.
내 기억 속에서 아버지는 수영을 잘하시는 편이었다. 그 기억이 물론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이었던 것 같은데 야외 수영장에서 아버지는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물살을 가르며 수영을 하셨던 것 같다. 그 시절 야외수영장은 아이들은 물속에서 튜브를 타고 놀고 어른들은 그늘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고기를 구우며 술을 드시곤 했다. 그렇게 먹다가 열이 오르면 수영 한 바퀴 돌며 식히고 또 술을 드시곤 했는데 지금이야 그때가 낭만을 가장한 야만의 시대였다고 하지만 한여름 아이들을 데리고 가던 피서지의 풍경들이 거의 다 그랬던 듯 싶다. 한 바퀴를 돌고 물밖으로 나온 아버지께 나도 수영을 배우고 싶다고 하자 원래 수영은 물을 먹으면서 배우는 거라고 하시며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 물속으로 나를 집어던지셨다. 발장구를 어떻게 쳐야 하고 팔을 어떻게 휘두르며 숨은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를 차근차근 배울 줄 알았던 나는 발이 닿지 않는 사실 자체에 패닉에 빠져 허우적 대다가 건져졌다. 물론 아버지도 정식으로 배운 게 아니라 나처럼 누군가에게 던져져 허우적대다가 배우게 되었다고 하셨지만 나에게 불가항력적인 물속의 상황은 수영을 해야겠다는 본능보다는 이렇게 죽는구나 라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수영장을 따로 가는 것도 아니고 수영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에 배우지 않았다.
5학년 때 신도시로 이사를 오고 나서 6학년이 되었을 때 학교에서 체험학습으로 실내 수영장을 처음 가봤다. 커다란 직사각형 수영장에 레일이 처져 있는 데 별 것 아닌 듯 하지만 신기했다. 우리가 수업하던 레일 몇 줄을 빼고 다른 레일에서는 어른들이 자연스럽게 수영을 하고 있었다. 이미 수영을 할 줄 아는 친구들은 레일 한 줄을 차지하고 누가 더 빠른가 시합을 하고 있었지만 나같이 수영을 못하는 아이들은 나머지 레일에서 발장구만 칠 뿐이었다. 심지어 사춘기로 2차 성징이 시작되던 시기에 수영복을 입고 있는 모습들을 부끄러워하던 때였기에 수영장은 더더욱 기피하는 곳이 되었다. 아버지가 올해도 온 가족 수영장에 놀러 가자고 하셔도 절대 반대였던 시기 었기에 수영을 배울 기회는 요원해질 뿐이었다. 수영 못한다고 불편할 일도 없고 관심도 없으니 나에게 물속에 들어가야 하는 경우의 수는 대중목욕탕의 냉탕과 온탕뿐이었다.
제주로 이주하고 호은이 고학년이 되어가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쏭도 물을 무서워하는 편이고 나도 수영을 못하니 호은을 데리고 수영장을 가는 일은 없었다. 어린이집 체험활동으로 유아용 수영장을 갔다고는 하지만 나와 같이 갔던 것도 아니었고 목욕탕에 데리고 가서 냉탕에서 첨벙대며 놀기만 했지 수영이라는 단어를 꺼낼 정도는 아니었다. 물이 빠지는 시간에 맞춰 해수욕장에 가서 깊어야 허리정도인 얕은 바닷가에서 튜브를 타고 놀고 모래사장을 파내려 가며 놀았지 더 깊은 물에 들어가거나 다이빙 같은 위험한 놀이를 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내 가족은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겠다고 다짐하지만 수영을 하지 못하니까 위험 요인을 사전에 차단해 버린 것이다. 그러다 결국 알아서는 안 되는 포구 수영이라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성산에 사는 지인에게 놀러 갔다가 집 근처에 있는 주어동 포구로 수영하러 간다고 하기에 따라갔다가 그 재미에 푹 빠져버렸다. 바닥이 안 보일 정도로 깊지만 구명조끼를 입으면 둥둥 떠있을 수 있기에 마음 놓고 뛰어들 수 있었다. 해수욕장에서 놀면 모래가 온몸에 뒤덮여 뒤처리가 힘든데 포구수영은 그럴 염려도 없고 물 위에 둥둥 떠있기에 안심이었다. 4학년 열혈 소년이었던 호은은 구명조끼를 입었다고는 하지만 겁도 없이 절벽같이 높은 포구에서 뛰어들며 놀더니 앞으로 해수욕장은 싫다는 선언을 하였다.
그렇다고 매번 성산까지 갈 수는 없기에 찾아보다가 집 근처의 작은 포구를 알게 되었다. 나만 늦게 알았던 곳이지 동네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던 스폿이었다. 혹시나 하는 걱정에 나와 호은의 무게에 맞는 구명조끼를 사고 처음으로 포구로 갔을 때 근처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팬티만 입고 다이빙을 하는 모습에 충격을 먹었다. 그 모습을 본 호은은 흥분을 못 이기고 구명조끼를 서둘러 입고 그 형들 옆에서 스스럼없이 다이빙을 하였다. 그 이후로 매년 여름마다 밀물 시간에 맞춰서 호은을 데리고 포구로 가는 것이 한여름 일상이 되었다. 올해에는 다른 포구에서 사고가 많아 포구 수영이 금지될 줄 알아서 호은의 실망이 컸지만 마을에서 시설을 만들고 어르신들이 수영이 가능한 때를 통제를 해주셔서 포구 물놀이를 할 수 있게 되어 뛸 듯이 기뻐했다. 그렇게 올여름도 물때 시간에 맞춰 몇 번이나 가서 호은과 물놀이를 할 수 있었다. 중간에 위험했던 작은 사고도 있었지만 물놀이 자체의 즐거움이 물에 대한 두려움을 이겼기에 포구에 가는 것은 항상 즐거웠다.
말복이 지나고 처서도 지난 지 일주일이 되어가는 요즘, 새벽과 밤은 선선하지만 여전히 한낮의 땡볕은 뜨겁기만 하다. 오늘 배송을 시작하자마자 샘솟는 땀을 닦다가 문득 어쩌면 오늘 일찍 끝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물때표를 검색했다. 딱 오후 2시 반이 만조였으니 기를 쓰고 하면 올해의 마지막 포구 놀이를 할 수 있을 듯해서 이를 악물고 배송을 했다. 호은도 방학 마지막 주였기에 오늘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서둘러 일을 끝내고 집으로 가면서 호은에게 전화를 걸어 '올해 마지막 포구 어때?'라고 묻자 '아빠 사랑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역시 처서가 지나고 나니 바닷물은 지난번 보다 차가워져 있었지만 볕은 아직 뜨거웠기에 한 시간여 동안 호은과 함께 물놀이를 즐겼다. 이제 학교에서 생존수영을 배우는 호은은 구명조끼를 벗고도 어푸어푸하며 수영을 하지만 나는 벗지 않고 수면에 둥둥 떠서 혹시나 호은이 위험할 까 옆에 있으며 감시하듯 보곤 했다. 주변에서 젊은이들이 하하 호호 웃으며 다이빙하고 멋지게 수영하는 모습을 보며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내가 수영을 하지 못해 호은에게 수영을 가르쳐 주지 못하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물을 좀 먹더라도 아버지께 확실하게 배워둘 걸 하는 후회가 든다.
내년에는 사춘기에 접어들 호은이 이제 아빠와는 이 포구에 안 올 텐데 하는 염려와 친구들하고만 놀러 왔다가 혹시 위험한 일이 생기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한꺼번에 찾아왔던 오늘 하루이다. 수영을 확실히 배워야 할 텐데 하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오늘 지금 당장의 즐거움을 앞서간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