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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 일기-19. 필사(筆寫)

쓰자. 어떻게든 써보자.

by 선호

영어는 ABC 알파벳만 알고 중학교에 입학했다.


'아이 엠 어 보이, 유 아 더 걸' 같은 말이야 알았지만 단어를 쓸 줄도 모르고 알지도 못했다. 국입초졸 시기의 영어는 초등학교 필수 교육과정이 아니었기에 집에서 항상 공부하라고 다그치던 부모님도 수학만 신경 썼지 영어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하셨다. 희미한 기억 속 중1 영어 선생님은 손이 참 매웠다. 어느 정도 기본은 하고 온 친구들과는 달리 내 백지 같은 영어 지식에 매 영어 시간마다 엉덩이도 맞고 발바닥도 맞고 뺨도 맞아보곤 했다. 그러면서 내주는 숙제는 항상 영어 단어 깜지 쓰기였다. 노트 한 줄을 세네 줄로 나눠서 쓰고 그렇게 적으면 1장, 많으면 5장씩 단어 열개, 스무 개를 써 외우라는 숙제를 내줬는데 그게 너무 싫었다. 가뜩이나 다른 과목 숙제도 많은데 깜지 숙제는 몇 시간을 허비하면서 써야 하기에 한 두 장 쓰다가 차라리 몇 대 맞고 말지 하면서 포기하곤 했다. 나름 치밀한 성격이라고 아예 안 써가면 매운 손에 맞다 죽을 것 같아서 숙제 양의 반 정도만 하고 영어 선생님에게는 다른 숙제를 먼저 하고 늦은 밤까지 하다가 잠들었다는 핑계로 열 대 맞을 매를 다섯 대로 줄이곤 했다. 반 정도 한다고 해도 워낙 작고 빽빽하게 써야 하기에 손가락이 부러질 듯했다. 그렇게 중학교 시절부터 나는 외국에 안 가고 한국에서만 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영어는 일찍이 포기했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영어를 포기했다. 고1 영어 첫 수업날 매너리즘이 가득 차 세상 모든 것이 귀찮아 보였던 영어 선생님은 '어차피 공부할 놈들만 하니까 하기 싫은 녀석들은 공부 방해하지 말고 입 닥치고 자라'라고 하셨다. 그래서 영어 시간은 마음 편히 잤는데 뜬금없이 제2 외국어였던 독일어에서 고난이 시작되었다. 영어도 포기했는데 독일어는 포기 못할까 하는 생각이었지만 마동석 같은 근육질의 독일어 선생님 앞에서 '독일어도 포기할게요'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굿모닝' 같은 초등학교 영어처럼 '구텐탁'이라는 아침 인사 같은 독일어를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깜지를 썼는지 셀 수도 없는 듯하다. 1학년 입학하자마자 3학년까지 바로 주름잡았던 우리 학교 싸움 짱도 독일어 선생님 앞에서는 얼마나 순한 양이었는지 그 아무도 독일어 하기 싫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중학교 시절의 영어는 손가락이 부러질 듯해서 포기했지만 독일어는 깜지 쓰느라 손가락이 부러지면 부러졌지 안 하면 다른 부위가 부러질 것 같아서 밤 12시가 넘어서도 독일어 단어를 보면서 깜지를 몇 장씩 쓰곤 했다. 그렇게 깜지를 써놓고도 지금 내가 아는 독일어는 '구텐탁' 딱 하나이다.


지난 두 달여간 글을 쓰지 못했다.

매년 여름이 올 때마다 느끼지만 점점 더워지는 여름과 한 살씩 먹어가며 떨어지는 체력은 글을 쓸 여유까지 뺏어가고 있는 듯하다. 배송해야 할 물량은 점점 늘어가고 얼마 안되는 월급 대비 조금씩 늘어나는 지출에 빠듯해지는 살림살이는 돈벌이 말고 다른 생각은 하지 못하게 되고 있다. 하루 종일 땡볕에 배송을 하고 퇴근해 줄이겠다고 다짐했던 술을 보상처럼 먹고 열 시가 채 되기도 전에 기절하는 하루가 반복되면서 점점 지쳐간다. '내일은 연재일입니다'라는 알림과 '어제 연재가 되지 않았습니다'라고 힐책하는 듯한 알림을 볼 때마다 죄책감이 들면서 '오늘은 조금이라도 써야지'라는 생각이 들지만 파김치가 되어 퇴근하고 나면 글쓰기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침대에 누워있다 잠들곤 한다. 열정이 어쩌고 초심이 어쩌고 하면서 썼던 지난 글들에 스스로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지만 '누가 많이 보지도 않는 글이고 내가 힘들어 죽겠는데 어쩔 것이냐'라는 합리화로 연재하기로 약속한 화요일, 목요일을 그냥 넘기고 있었다. 그 전 글을 못 썼던 이유는 간헐적 우울이었지만 지금은 단지 힘들다는 핑계로 안 쓰고 있었기에 중고등학교 때처럼 회초리를 맞아도 할 말이 없다.


가끔 호은이 다니는 학교에서 책 구입 지원금 같은 것이 나온다. 세상이 좋아져서 나라에서 책도 사주곤 한다. 일정 기간에 지정된 서점에서 한 권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하기에 배송이 끝난 후 급하게 탑차를 타고 호은과 함께 서점에 갔다. 호은이 책을 고르는 동안 나도 뭐 볼 책 있나 하면서 둘러보던 중에 우연히 어른용 필사책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집어서 호은이 고른 책과 함께 결제를 했다. 글을 쓰지 않고 있던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차라리 필사라도 하라고 했던 것 같다. 얼결에 책을 사기는 했는데 이대로 집에 가면 그냥 책장에 꽂아놓고 잊을 것 같아 쏭에게 꼭 한 권 다 쓰겠다고 다짐한다는 말과 함께 사진을 찍어 보냈다. 가뜩이나 우울한 남편이 오랜만에 뭔가 하겠다고 하니까 기뻐하며 가족이 다 함께 하자는 제안을 했다. 혼자보단 같이 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냐는 말에 쏭과 호은의 필사책도 주문해서 잠자리 들기 바로 직전에 식탁에 모여 필사를 하기 시작했다. 각자 자신의 책 한 페이지를 필사하고 한 명씩 돌아가며 읽고 나면 서로에게 박수를 쳐주곤 하는데 기분이 썩 좋다. 하루의 마무리가 가족의 단합으로 끝나는 것 같아서 참 좋은 듯하다. 피곤에 못 이겨 필사를 하지 못하고 기절하듯 잠들어 버리기도 하지만 되도록이면 꼭 하려고 한다. 그렇게라도 무언가를 쓴다는 것에 이 하루하루가 힘든 40대 중반 아저씨의 메말라 가는 감성에 보슬비라도 뿌려주는 듯하다.


내 필사책은 법륜 스님의 '지금 이대로 좋다'이다. 짧은 글들이 많지만 글을 쓰고 읽고 박수 치고 하면서 참 좋다. 백일 동안 필사하기 중 열흘을 넘겼으니 시작이 좋다. 계속 쓰다 보면 다시 글쓰기도 할 수 있음직 하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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