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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 일기-17. 터널

오랜만입니다.

by 선호

우울함은 어느 순간부터 항상 내 곁에 있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했고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타인과의 관계 맺기는 항상 필요에 의한 기브 앤 테이크로 생각했기에 굳이 내가 필요하지 않은 이상 먼저 다가가는 일은 거의 없다. 친구라는 단어로 받아들여지기까지 나라는 인간을 온전히 기다려주고 받아줄 사람은 없었기에 친구라고 불리는 사람도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친구라는 범위에 들어서게 되면 한없이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이지만 그 이외의 관계인들은 단순한 동료 또는 지인에 불과하다. 겉으로는 친절하고 싹싹한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마음속에서는 내 앞에 있는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마음속으로 계산해 보고 그에 맞는 행동과 말을 꺼내는 로봇 같은 위선자일 뿐이다.


그렇기에 살아왔기에 우울하고 외롭다는 감정은 내 인격의 밑바탕이다. 그것 자체를 내가 선택한 것이기에 후회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감정들이 가끔 내 마음속 용량을 초과해 버리는 시기가 오면 끝도 없는 우울함이 찾아오곤 한다. 학생 시절에는 두세 명 밖에 안 되는 친구들이었지만 거의 매일 보며 지냈고 대학로에서 공연하던 이년 반의 시간 동안은 일을 하는 즐거움에 빠져 외로움이나 우울이 마음에 들어올 겨를이 없었다. 대학로에서 도망치고 직장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그 어두운 감정의 적립이 시작된 듯하다. 적금통장에 돈이 쌓여서 만기가 되어 목돈을 받는 기쁨을 누리면 좋겠지만 회사 생활을 하며 마음속 외로움과 나쁜 감정들이 쌓여서 어느 순간이 되면 폭발하듯이 우울함이 내 머릿속을 가득 담기 시작했다. 나름 열심히 일을 했기에 회사 부서에서 분위기 메이커에 일 잘한다는 소리도 들었지만 우울함이 터지는 기간이 되면 항상 하던 일에도 실수를 하고 부서장에게 정신줄 어디에 두고 일을 하냐고 혼이 나곤 했다. 공황같이 심각한 상태가 되는 것은 아니었고 일주일 정도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곤 했기에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며 지내왔다.


쏭과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행복한 신혼 생활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둠이 적금처럼 조금씩 쌓여갔다가 터져버렸을 때 쏭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결혼 전에도 말을 하긴 했지만 막상 감정이 터져 죽어버린 내 눈빛을 본 쏭은 많이 놀랐던 것 같다. 일주일 정도면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온다고 힘없이 말하는 나에게 쏭은 어떻게든 즐겁게 해 주려고 재롱을 피곤했다. 그때그때 넘어가기는 하지만 한없는 우울함에 예민해지면서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는 나를 쏭은 잘 참아주었다. 일 년에 많으면 세 번, 적으면 한 번 정도 그렇게 무너져 오는 우울에 호은이 태어나면서 어떻게든 참아보려고 애를 쓰지만 무너져버리는 멘털을 붙잡기는 힘들기만 했다. 서울에서는 1년에 한두 번이라도 친구들을 만나며 속풀이라도 하면서 고비를 넘기곤 했지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제주로 와서 지낸 9년의 시간 동안 회복기간이 1주가 2주가 되고 한 달이 되면서 몇 번의 고비가 있었다.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듯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 같은 하루를 보내는 느낌이다. 그 터널 속에서 자꾸 계속 터널 속에 있으라고 하는 목소리가 느껴진다. 터널 밖은 바람 불고 비 오고 눈 오고 힘들다고. 그냥 터널 속에 있으면 된다고 자꾸 머릿속에서 속삭이는 느낌이다. 제주 시내뿐만 아니라 중산간 같은 촌지역도 배송하면서 어디 도로를 조심해야 하고 어디가 사고 다발 구역인지를 알기에 그런 속삭임이 운전대를 잡은 내 손에 영향을 줄 것 같아 불안하지만 이겨내려고 노력하곤 한다. 그런 느낌 자체가 불쾌하고 싫어서 나오고 싶지만 자꾸 주저앉게 되는 것이 반복되다가 어느 순간 길고 길었던 터널 끝의 빛이 보여 나가면 그 끝엔 항상 쏭과 호은이 기다리고 있다. 그걸 알게 된 순간부터 어떻게든 감정의 용량이 넘쳐 어두운 터널에 들어서면 빨리 나가려고 노력한다. 지난 쏭의 생일에 찾아온 우울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비워진 듯하다. 기다려준 쏭과 호은에게 참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가득이다.


예전 글에서 썼던 추억 중 쏭과 했던 여행이 생각이 났다. 초여름, 에어컨이 고장 난 차로 강원도로 놀러 가면서 더위에 지쳐 쓰러진 쏭에게 미안해 운전하는 내내 노래를 불러줬던 나였다. 밖에서는 창문을 열고 달렸지만 터널에서는 어쩔 수 없이 창문을 닫고 갈 수밖에 없었다. 노래를 부르고 재롱을 피우며 운전을 했지만 길고 긴 15.7km의 미시령 터널의 끝은 보이질 않았다. 후끈한 차 안에서 반쯤은 기절한 쏭은 터널을 벗어나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으며 깨어나 미안해하는 나에게 오히려 괜찮다고 웃어주었다.


지금 터널 속에서 정신 못 차리는 나를 잡아주고 있는 건 오직 하나. 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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