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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코리아 타운!

미국 야구 도전 Start

by 드림위버

2000년 11월, 3년 간 있었던 두산에서 방출 통보를 받았다.


술에 취해 보내는 하루 하루가 이어졌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대로 야구를 포기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너무 괴로웠기 때문이다.


다른 7개 구단을 알아봤다. 하지만 나를 받아주는 데가 없었다.

한국에선 더이상 야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한 달간 공사장에서 300만원을 벌어 무작정 미국으로 떠났다.

왜 미국이냐고? 그저 막연한 생각이었다. '이왕 야구 도전을 할 거면 미국으로 가자'라는 막연한 생각.


150만원은 비행기 값으로 쓰고, 나머지 150만원을 생활비로 가져갔다.

그 많은 곳 중에 LA행 티켓을 끊은 이유도 단순했다. LA 다저스에 박찬호가 있었기 때문.


막상 LA 공항에 도착해보니 막막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하나...

미국에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처음 도착해서 어디로 갈지조차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뉴스에서 봤던 단 하나의 지명, 코리아 타운이 떠올랐다.


'일단 거기로 가보자.'


그렇게 불안하고 막막한 마음을 애써 추스르며, 무작정 택시를 타고 짧은 영어로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


"고, 코리아 타운"

iStock-916948392.jpg 2018년에 찍은 LA 코리아타운


코리아타운 첫번째 보이는 호텔에 내려서 무작정 들어갔다. 호텔 프론트 직원은 다행히 한국 사람이었다.

한 달 숙박료를 계산해보니 100만원 정도 됐다. 일단 2주 정도 머무를 생각이었다.


호텔에 짐을 풀고 나니 이제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하나. 다시 또 막막해졌다.

그래도 미국에 온 이유는 단 하나. 야구를 하기 위함이었으니, 어떻게든 길을 찾아내겠다고 다짐했다.


근처 한인식당에서 매일 순두부찌개와 김치찌개를 번갈아가며 먹었다. 한 번 먹을 때마다 6~7불 정도 썼다.

그렇게 3주를 보냈고, 한국에서 갖고 온 전재산 150만원을 다 써버렸다. 호텔에서도 나와야만 했다.


오갈데 없는 나는 결국, 길거리 노숙 생활을 하게 된다.


길바닥에 나 앉게 된 위기 앞에 절망감 보다도, 오히려 허무함이 더 컸다.


ray-donnelly-dZ_CSuWZDss-unsplash.jpg 노숙인의 거리 생활 모습(실제 내용과 무관한 참고 이미지)


그렇게 나는 호텔 근처 공원 길거리에 그냥 누웠다.

그곳에 온갖 그지 새끼들이 텃새를 부렸다. 나는 꺼지라고 발로 밟고 빈 깡통을 던지기까지 했다.

말도 안되는 영어를 써가며 그냥 막 싸웠다.


"갯더 뻑어라 히어"


목숨 걸고 그렇게 1주일을 잤다.


그 때 날 구해준 분이 있었다. 바로 호텔 프론트 직원 형님이었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냐. 우리집으로 들어가자. 밥은 먹었고?"


내 처지가 불쌍했던지 형님은 본인 집에서 같이 살자고 했고,

염치를 따질 겨를도 없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이미 두 커플이 살고 있던 그의 조그만 집에서

두 여자분들의 눈칫밥을 먹으며 살아야만 했다.


투 배드룸에 거실이 있는 구조였다. 나는 조그만 거실에 짐을 풀었다.

프론트 직원 형님 커플은 '한-한' 커플이었고, 다른 커플은 '한-일' 커플이었다.


일본 여자애 이름이 마리꼬였던 걸로 기억한다. 일본 지역 아나운서 출신의 컬리지 유학생이었다.

그 집에 사는동안 마리꼬가 나를 꽤 많이 챙겨줬다. 자연스레 친해지면서 일본어도 조금씩 가르쳐줬는데,

그때 배운 일본어가 1년 뒤, 뜻밖의 순간에 유용하게 쓰이게 된다.


다섯명이 한 집에서 밥도 먹고 술도 먹고, 그렇게 지냈다.

근데 집이 워낙 좁다 보니, 낯선 여자들과 한 공간을 공유하는 게 솔직히 조금은 불편했다.

특히 남자 둘이 일하러 나가고 여자 둘만 남는 날이면, 결국 나까지 셋이 같은 공간에 있게 되는 셈이라

괜히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다. 누가 들으면 이상한 상상도 하겠지만, 그런 건 1도 없었다.


그렇게 눈치 보던 생활이 이어졌지만, 내가 미국에 오게 된 이유는 분명했다.

야구를 도전하러 온 것이니, 나는 매일마다 코리아타운 근처 공원에 나가 혼자 러닝을 하고 캐치볼도 하며 몸을 만들었다. 그 공원은 주로 멕시칸 애들이 축구를 하던 곳이었다.


캐치볼 상대는 공원에서 노숙하던 멕시칸 애들이랑 했다.


'아니 XX, 그지같은 새끼가 내 볼을 어떻게 받아?'


하고 던졌는데, 받더라? 그것도 겁나 여유있게 ㅎㅎ

순간 '뭐지? 이새끼 야구선수 출신인가?' 싶어 깜짝 놀랐다.


그렇게 매일 훈련을 하고, 눈칫밥도 먹어가며 또 훈련하고...그런 생활을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날, 호텔 형님이 좋은 정보를 하나 얻어왔다.


"병목아, 멕시코인들이 몰려사는 동네에 멕시칸 사회인 야구 리그가 있다는데. 훈련한다고 생각하고 거기라도 가볼래? 시합은 주말에만 있다고 하더라."


그 얘기를 듣고 알아보니, 무려 50개 팀이 가입되어 있는 멕시칸 사회인 야구 리그였다.

비록 사회인 야구이긴 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거길 가게됐다.


그 팀 감독인 까를로스와 인사를 했다.

테스트를 봤는데, 타자로 1홈런에 투수로 무실점 피칭까지 해서 합격했다.


그게 미국에서의 첫 야구 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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