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보러 왔다고?
상대가 아마추어이긴 했지만, 그래도 실전 투구를 할 수 있다는 데에 의미가 있었다.
'평일에는 나 혼자 공원에서 벽치기를 하고, 주말엔 여기 와서 실전 투구를 하자.'
이렇게 나만의 연습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꽤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경기를 하러 갔는데, 야구장이 유난히 술렁거리고 있었다.
눈에 띈 건, 평소랑 다르게 정장입은 백인 4~5명이 백넷 뒤에 있었다. 뭐지 저 백인들은?
까를로스에게 가서 물어봤다. "누구냐 저들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야"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라니. 예상치 못한 기회가 눈앞에 굴러 들어왔다.
물론 그들이 나를 보러 온 건 아니었다. 상대팀 선발이 16살짜리 멕시코 투수인데,
무려 95마일(약 153km)을 던진다는 소문에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몰려온 것이다.
그리고 하필이면, 내가 바로 그 16살 투수와 선발 맞대결을 펼칠 투수였다. 쟤를 보기 위해 왔지만, 자연스럽게 나를 보여줄 기회가 된 셈이었다. 괜히 마음이 조급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전력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정말 웃픈 일이 벌어졌다.
16살 투수가 던질 때는 스카우트들이 스피드건을 들고 집중하더니,
막상 내가 마운드에 오르자 스피드건을 내려놓고 자기들끼리 노가리를 까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도 좀 보라고 이 XXX들아.'
속으로 외쳐댔다.
근데 끝까지 안 보더라.
'나도 95마일은 아니어도, 한국에서 144km는 찍었다고.'
결국 아무도 날 봐주지 않았다.
1이닝이 끝나고 우리 공격이 되자 나는 백넷(Back Net)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헤이, 아임 코리안 프로페셔널 플레이어, 오케이?"
"오오, 유 프로페셔널 플레이어?"
"헤이, 룩 룩! 오케이?"
"오오... 오케이!"
다음 이닝이 되자 내가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백넷 쪽을 바라보니, 다섯 명 중 딱 한 사람만 스피드건을 꺼내들고 있었다.
그는 내가 던지는 공을 다섯 개쯤 체크하고는, 스피드건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경기가 끝나자 나는 까를로스를 찾아갔다.
"혹시 저 스카우트들이 내 얘기 안하디?"
까를로스는 당연한 듯 말했다.
"노바디. (아무도)"
괜히 실망만 했다.
혹시나 하는 바람으로 기대했는데, 역시나였다.
실망스러운 기분으로 집에 돌아갔다.
나홀로 거실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데, 스피드건을 내리던 스카우트의 모습이 떠올라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이런 기회가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다음 날, 평소처럼 공원에 도착해 벽치기를 하며 연습을 시작했다.
공을 더 빠르게 던지려고 노력했다.
마치 그날의 아쉬움을 힘으로 밀어붙이듯, 손끝에 더욱 집중했다.
그리고 토요일이 되어 다시 경기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때 그 스카우트가 또 와 있었다.
까를로스가 씩 웃으며 말했다.
"유, 이번엔 너 보러 왔대."
그는 바로 애너하임(현 LA) 에인절스의 스카우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