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과 음식점에 도착했다. 다른 일행이 오는 동안 기다리며 음식점 앞마당을 거니는데 백구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순하게 보였지만 나를 발견한 즉시 짖기 시작했다. 어딘지 어설프지만 끝없이 나를 경계하는 하얀 솜 덩어리. 어라, 자세히 보니 녀석은 꼬리를 심하게 흔들고 있다. 반갑기는 한데 넌 누구냐, 하는 경계의 표시. 반갑다는 거야, 저리 가라는 거야, 너 되게 웃긴다.. 하고 웃음이 났다.
문득, 백구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이 비치어졌다. 나는 강아지를 귀여워하지만 무서워한다. 세상 밝은 미소로 말을 걸고, 손짓도 하고, 사랑을 줄 듯이 굴지만 정작 강아지가 갑자기 가까이 다가오면 지레 겁이 나서 뒷걸음질을 치며 나도 모르게 싫은 기색을 보인다. 아마 표정이나 눈빛도 겁에 질려있을 것이다. 강아지 입장에서 환장할 노릇이다. 아니 이 사람은 나를 반가워하는 거야, 저리 가는 거야. 너 되게 웃긴다.. 할 것 같다.
이중 감정.
반가운데 겁이 난다
좋지만 두렵기도 하다
미안하지만 홀가분하다
슬프지만 편안하다
기쁘지만 죄책감이 느껴진다
화가 나지만 시원하다
이중 감정을 느낄 때, 나는 내가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논리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두 감정이 동시에 느껴진다는 것이 불편하고 혼란스럽다. 어느 쪽 감정이 진짜인지 알 수 없고, 어느 쪽 감정이 상황에 더 적합한지를 머리로 해석하게 된다.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것은 정말 이상한 것일까?
두 가지가 아니고 세 가지, 네 가지, 그 이상의 감정도 동시다발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아, 내가 좋아하지만 가까워지는 건 좀 겁이 났구나... 미안하긴 한데 홀가분하구나... 하고 내 감정을 알아차려주는 것이 1번 아닐까. 이중 감정을 느끼는 즉시 곧장 그 상황에 '옮은' 감정을 머리로 헤아리거나 내 감정 자체를 외면해버리는 것이 더 이상한 행위가 아닐까.
느끼면 안 되는 감정이란 것도 없고,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고 있다면 느끼고 있는 그것이 정답이다. 남들 전부 슬픈데 나 혼자 기뻐도 되는 거고, 남들 다 기쁜데 나 혼자 슬퍼도 되는 거다. 슬프면서 약간의 희열이 느껴져도 되는 거고, 기쁘면서 약간 허탈할 수도 있는 거다. 그저 그때 그 순간, 내게 느껴지는 감정을 인정하고 그대로 느껴줄 뿐.
여러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것은 아무 문제가 아니라고, 그저 지금 네 가슴에서 느껴지는 것을 잘 느껴주라고, 이상할 것도 잘못한 것도 없다고, 나에게 그리고 백구에게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