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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이모 Aug 11. 2022

빨간 맛, 순한 맛, 물 맛


여름은 뭐니 뭐니 해도 시원한 게 당긴다. 마트에 갈 때면 빨간 맛과 순한 맛, 물 맛 중 무엇을 고를지 심히 고민한다. 전부 다 아는 맛이지만, 은근히 그날 그 순간에 당기는 게 있는 법.


삶에서도 그러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먼저 빨간 맛!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을 때, 나를 뽐내고 싶을 때, '나'가 빛나고 싶을 때는 '빨간 맛'. 강렬하게 화악 기쁘다. 그 이전과 그 이후는 계속되는 긴장감. 내가 빛나야 하니까. 내가 잘되어야 하니까. 내가, 내가 드러나야 하니까. 자극적인 빨간 맛, 스크류바 맛, 자꾸 당기지만 질리는 맛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순한 맛!


누군가를 조용히 서포트할 때, 말없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줄 때, 다른 이들의 배경이 되어줄 때는 '순한 맛'. '나'를 드러내고 싶은 꿈틀거리는 그 '나'를 내려놓으면 내가 좀 순해진다. 그럴 땐 잔잔하게 가슴에 평온함이 피어오른다. 그 이전과 그 이후는 편안함. 내가 빛날 필요가 없으니까. 함께 하는 님들의 가슴과 함께 흐르면 되니까. 파스텔톤 같은 순한 맛, 누가바 맛, 호불호 없는 맛이다.


세 번째는 바로 '물 맛'!


어떠한 '나'라는 생각조차 없는 순수한 몰입의 순간, 매 순간 내 앞에 상황에 오롯이 하나 된 순간은 아무 맛도 안나는 '물 맛'같다. 순간과 하나 되어 느끼는 것. 그것이면 된다. 그 이전도 없고 그 이후도 없는. 매 순간 지금 여기를 살면 삶 전체에 은은한 기쁨과 고요, 평화가 흐른다. 때로는 빨간 맛이 당겨서 냅다 먹기도 하고, 순한 맛이 심심하니 편안하기도 하지만, 가장 목마를 때 아이스크림 백개 줘도 생수하고는 안 바꾼다. 시원한 '물 맛'이 최고!


내 생각으로 끝없이 어떠한 '나'이고 싶어 하는 그 '나'를 내려놓고, 지금 여기를 온전히 느끼는 삶. 매 순간과 하나 되어 '있음'으로 깨어 사는 삶. '삶은 순간순간의 있음'이라는 법정스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법정스님은 진작에 물 맛이 최고인 걸 아셨던 게지!


어떤 날은 빨간 맛으로, 또 다른 날은 순한 맛으로.. 때론 물 맛으로. 언제든 내 삶의 주인으로, 내가 선택해서, 빨간 맛이든 순한 맛이든 물 맛이든 맛있게 먹고 즐기는 삶을 살고 싶다.


이것저것 많이 먹다 보면, 이리저리 많이 경험하다 보면, 결국 물 먹으러 가더라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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