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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이모 Aug 31. 2022

오래된 미래


라다크에 가고 싶던 때가 있었다. 7년 전 마음에 바람이 불던 시절, 이 땅이 아닌 다른 땅을 기웃대던 서성임의 시절. '오래된 미래'를 읽고 시작된 열망이었다. '오래된 미래'헬레나 호지라는 로컬 경제 운동가이자 환경운동가인 저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라다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서부 히말라야 고원의 작은 지역 라다크. '작은 티베트'라고 불리기도 하는 청정지역. 저자는 그들의 삶의 방식을 통해 우리가 사는 사회와 지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도록 이끈다. 마음에 바람부는 계절, 불쑥 그곳에 당도해 그들을 만나 보고 싶게 하는 흡입력 있는 이야기 역시 충분히 매력적인 책.


그녀의 시선에 비친 라다크 사람들은 각자의 기쁨에 잔잔히 취해있는 사람들이다. 크게 동요하지 않되, 자신 안으로 깊어져 있는 사람들.


오래도록 내 가슴에 기억나는 장면 하나는, 저자와 라다크인 여럿과 그곳에 새로 온 학생 두 명과 함께 커다란 이동수단을 함께 타고 가는 장면이다. 나이가 어린 학생들은 예의란 것이 없어 보인다. 중년 남성인 라다크인에게 물을 떠 오라 시키고, 하인 부리듯이 부리며 상대를 무시하는 듯한 행위를 한다. 그런데 그는 전혀 흔들림 없이 그들이 요청하는 것을 그대로 행한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저자와 책을 읽는 나는 분통이 터질 노릇. 아니 저노무 자식들 좀 봐라... 허나 그의 태도는 고요하고 평온하다. 마치 '무시하다'라는 말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른다는 듯이. 그럴 수도 있을까, '무시하다'라는 단어가 어떤 사회, 어떤 문화권에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을까. 혹은 어떤 한 존재의 의식 안에 '무시하다'라는 단어가 애초에 탄생하지 않을 수도 있을까.


라다크인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 속에는 대화보다 묘사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말이 백 프로 통하지 않아서였겠지만 라다크인들끼리도 말이 길어 보이진 않는다. 몸을 움직이거나 얼굴을 찡그리거나 눈빛을 전하거나... 그들은 크게 '말'에 영향을 받지 않는 영혼들 같았다.


글이나 말을 많이 사용하는 이들은 업을 쌓는 이라는 누군가의 글을 읽고 라다크를 떠올렸다. 다음 생에는 말없이 눈빛과 쓰다듬만으로 사랑할 수 있는 세계에 살아도 좋겠다. 몇 개의 말이 필요하다면, '사랑한다' 라는 동사만 유사어 백개 정도 있는 세계라면 좋겠다. "무시하다. 서글프다. 기다리다. 불안하다. 그리웁다" 같은 동사는 그 세계에서는 일찍이 추방당했으리라.


사람이 사람을 무시한다는 것은 두 사람 모두의 마음 사전에 "무시하다"라는 단어가 있을 때만 가능한 이야기. 스토리는 그렇게 시작되는 법. 서로의 다른 마음사전이 어긋나면서 불행이든 불만이든 오해 같은 아이들이 탄생하는 법.


만일 내가 마음사전을 편찬한다면, "무시하다"라는 단어는 지우리. 그리하여 그대가 내게 아무리 무시하는 말을 한다 해도 해사하게 웃으리. 마치 러시아말을 듣고는 좋은 말이려니 추측하며 웃듯이..


아무리 그대가 이리저리 나를 부려도 무시한다는 생각은 차마 못하리. 몸이 고되고 피곤하니 그리하는 것이겠지, 생각하며 내 안에 사랑을 동력삼아 기꺼이 내 몸을 움직이리..


라다크에 가고 싶다. 그곳 바람을 맞으며 나를 성나게 하는 몇몇 단어들을 자유롭게 풀어주고 싶다...


기뻐하라.

움직이라.

그리고 고요하라.

라다크에게서 배워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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