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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이모 Aug 19. 2022

남극에서 온 편지


Scientist04 에게서 메일이 도착했다.


아이가 자꾸 같은 꿈을 꾼데. 우리 아파트 뒤에 뒷동산이 있거든. 그 산에 엄마랑 같이 갔다는 거야. 거기에 보물이 가득 들어있는 곳을 봤다는 거야. 거기를 가보자는 거야. 몇 번을 연달아 꿈을 꿀수록 더 그럴듯해지고 선명해지는 아이의 꿈.


나도 거기가 어디쯤인지 눈짐작이 되는 거야. 정말 가봐야 되나, 정말 보물이 있으면 어쩌나, 싱거운 상상을 했지. ㅎ 어느 날은 내심 기대하는 마음으로 진지하게 물어봤어.


"진짜 거기 보물이 있어?"

눈을 반짝이며 아이가 말했다.


"응. 거기 보석이 가득 있어.

그거 있으면 엄마 일 안 가도 되잖아.

엄마 돈 안 벌어도 되잖아."


헐.....


그리고 이어지던 아이의 말.

"할머니가 그랬어. 엄마는 돈 벌어야 된다고.

그거 있으면 엄마 일 안 가도 되는 거 아니야?"


갑자기 한 대 맞은 느낌이 이런 걸까?


코로나로 1년 휴직을 하고 복직을 며칠 남기지 않은 때였다고 했다. 꿈에서도 엄마랑 떨어지기 싫었던 아이. 두해 걸러 몇 달씩 남극으로 펭귄 친구를 만나러 가는 엄마를 독차지하고 싶은 아이.  며칠... 또 며칠 그렇게 마음에 바람이 불더란다. 나... 잘하고 있는 걸까?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유일한 '과학자'이자 남극을 친척집 드나들 듯하는 자랑스러운 L양에게ㅡ


남극에서 부는 바람이 싸늘한 건지, 네 마음이 얼어붙은 건지, 과학자들은 원래 메일도 이렇게 Fact 중심으로 쓰는 건지... 네 마음이 잘 만져지지 않아서 마음이 그랬어. 오랜만에 고등학교 때 너랑 같이 썼던 교환일기를 들춰봤어. 이과 중에 이과, 이성적이었던 너와 문학소녀였던 나. 지금 생각해도 우린 교환일기 쓰기에는 신기한 조합이지 않니? 이걸 내가 간직하고 있는 걸 보면, 내가 감성 쪽이 맞긴 한 거 같다. 우리의 수많은 꿈과 방황, 고민들로 빼곡히 채워진 이야기들... 릴케의 시를 읽고, 전혜린의 슈바빙 구역을 상상하며 나는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했고, 공부를 엔간히 잘하던 너는 꿈이 없다고 했어. 책은 내가 다 읽는데, 언어영역마저 나보다 더 점수가 잘 나와서 나를 분개하게 했던 너! ㅎㅎ 그런 너는 한 번도 멈추지 않고 기다랗게 공부했고 세상의 저 끝 편에 날아가서, 지구온난화 같은 것에 대해 연구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었지.


인생에 정답은 없는 거 같아. 인생이란 뭐랄까. 한 단어로는 담아내기 힘든 '운명'이랄까. '인연'이랄까. 그런 것에 의해 흘러가는 것도 같아. 눈 떠보니 회전목마 타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롤러코스터 타고 있는 사람도 있고.. 신밧드의 모험 같은 삶을 사는 사람도 더러 있고... 나는 왜 이런 거 타냐고, 쟤가 타는 게 좋아 보인다고 해도 소용없다는 걸 나이가 들면서 우린 알게 되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내게 주어진 이 삶을 받아들이는 것. 이번 생에 내가 탈 것은 이것이구나, 하고 경험해볼 일뿐! 너는 눈 떠보니 펭귄 나라를 드나드는 이방인의 삶인 거지. ㅎ 지금 내 앞에 펼쳐진 현실을 힘껏 살아보자. 오늘의 나를 믿고 오늘을 살고, 내일은 내일의 나를 믿어주기로 하고.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알게 될까. 지금의 우리가 잘 살아내고 있는지를.


펭귄한테 엄마를 뺏겨서 서러운 공주님 꿈에는 사과이모가 들러볼게. 새끼 업고 북극으로 이동하는 혹등고래들한테 부탁해서 다 같이 신나게 놀아볼게.



마음을 담아,

Scientist04 에게로 답장을 보냈다.




 p.s 교환일기에 (짝)사랑 얘기도... 많아 많아 아주 많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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