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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이모 Oct 14. 2022

우리 다 즐겁게 안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대사 중, 짧은 문장이 오래 가슴에 남아있다. 죽음을 앞둔 현아의 전 남자친구가 주인공 창희에게 했던 말. "창희야 난 즐거운 사람이 필요해. 창희야 즐거워야 된다." 죽음 앞에서 그가 가장 후회되는 것은 즐겁게 살지 않았던 삶이었을까. 어딘지도 모를 어딘가로 바쁘게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죽음이 건네는 말은 가벼운 듯 묵직하다. 즐겁게 살라니. 니들은 즐겁게 살다가 천천히 오라니. 사랑하며 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는데, 즐겁게 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가슴이 시큰하고 뭉클했다. 우리 다 즐겁게 안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뜨끔했다. 즐겁게 사는 것을 생각하면, 나의 아버지가 떠오른다. 1940년대에 태어난 사람 중 내가 아는 한, 가장 명랑한 남자 사람.


대학에 막 들어갔을 때로 기억한다. 당시 예능은 포텐 터지듯 재미있었다. 토요일 저녁, 나는 소파에서 뒹굴거리며 1박 2일을 보며 낄낄대고 있었다. 그때, 아빠가 소파에 와서 앉았다. 나는 옆에 있던 리모컨을 잽싸게 쥐었다. 아빠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나는 이미 전투 모드였다. '안돼 안돼, 나 이거 봐야 돼!' 아빠는 그런 나를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 넌 이런 걸 왜 보고 있냐? 남들 노는 거를! "


" 재밌잖아.. 얼마나 재밌는데! 저 사람들 진짜 웃겨! 벌칙으로 게임하는 거 진짜 재밌어"


내 말을 듣고 아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 남들 노는 거 말고, 니가 나가서 직접 놀아. 게임도 직접 하고, 여행도 니가 직접 가보고. 그게 진짜 재밌는거야"


아빠는 '내 삶은 내가 즐겁게 살아야 한다'를 몸소 실천하시는 분. 일본어, 서예, 골프, 탁구 등 자신의 취미생활을 긴 시간을 들여 전문가 수준으로 만드시는 모습은 찬탄스러울 정도다. 무엇보다 그 모든 걸 즐겁게 하신다. 곧 팔순이 되는 나이에도 아빠의 즐거움은 현재진행형.


지나가는 말일 수도 있었는데, 어쩌면 리모컨을 뺏기 위한 전략이었을 수도 있었는데(그건 아니겠지?) 그때 아빠의 말씀은 내 가슴에 오래 자리하였다. 직접 내 몸으로 경험해야 내 것이 되는 거구나,, 어렴풋이 알아졌달까.  후로 나는 TV에 흥미를 잃고, 밖으로 나돌아 다녔다. 세계 곳곳을 여행했고, 관심 있는 이것저것을 가열차게 배웠다. 술자리 가면 게임을 하자고 소심하게 졸라대며 사람들을 괴롭혔다.


보는 재미 역시 흥미롭다. 스토리가 있는 드라마나 사람들 사는 이야기가 담겨있는 프로그램일부러 찾아서 다. 가끔 예능을 보기도 하지만 너무 길게  TV 앞에 앉아 있지 않으려고 한다. 넋 놓고 TV를 보고 있다 보면 나이 지긋하신 아버지가 내 옆에 와서 앉아있는 것 같아서. 리모컨을 스윽 쥐고 자신이 좋아하는 채널을 틀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다.


"넌 나가서 직접 놀아. 그게 더 즐거운 거야! "


이 나이 고 보니, '맛있는 거 먹고 즐겁게 사는 게 최고야'라는 말씀. 그 나이가 안되어봐서 잘은 모르겠지만, 어쩐지 진리 비슷한 것 같아서 오늘도  해야 즐거울까 궁리하며 기분좋은 상상을 한다. 산책하며 가을꽃 냄새도 맡고, 가을여행도 가야지, 경주가 좋을까, 섬진강 자락이 좋을까, 사람들 만나 수다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어야지... 


죽음이 삶에게 살라고 한다.

노년이 청춘에게 살라고 한다.

살되, 즐겁게 살라고 한다. 

그래서 그리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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