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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이모 Oct 13. 2022

내가 일으킨 전쟁


제주의 게스트하우스 4명의 여행객들과 함께 있던 밤. 나는 2층 침대의 2층에 뻗어있었다. 낮에 했던 해녀체험이 문제였다. 전복을 캐겠다는 야망을 품고 물로 뛰어들었지만 야망은 제대로 망해버렸다. 온 힘을 주고 허우적거렸더니 저녁에 온 몸이 녹는 것처럼 기진맥진해버렸다.


밤 12시가 넘은 시각.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욱신욱신. 뒤척뒤척. 어느 순간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통증에 나는 공포했다. 2층 침대다 보니 층고가 낮아서 일어설 수도 없었다. 몸을 공처럼 말기도 하고, 무릎 꿇었다, 누웠다, 옆으로 누웠다, 안간힘을 다해서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30분 이상을 온 감각을 동원해서 나는 고통에 저항했다. 사람들이 모두 잠든 시각. 나 때문에 사람들을 깨울 수 없다, 라는 그 생각도 팽팽하게 긴장을 더하게 했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이 고통을 멈추게 해주는 약이 있다면 천금을 주고라도 바꿀 수 있으리라. 그 어떤 자세로도 고통은 나아지지 않았다.


온 힘을 쥐고 뒹굴다가 문득. 알아졌다. 아.. 어떻게 해도 안되는구나, 어떻게 해도 이 고통은 계속 여기 있겠구나.  이 고통을 상대할 수 없구나... 그 순간, 온몸에 스르륵 힘이 빠졌다. 대자로 누워 "아 몰라 이제 더는 못해" 중얼거리며 있는 그대로 내게 밀려오는 고통을 받아들였다. 완전한 '항복'이었다. 내 몸을 통해 흐르던 고통이 나를 관통하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기다란 철사가 휘청거리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를 통과해갔다. 몸의 부분 부분이 건드려지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었다. 그냥 그것이었다. 내가 고통이라 이름 붙였던 그 녀석은 그렇게 내 몸을 두세 번 흔들고는 그 위세가 점차 꺾이며 잦아들었다.


그 밤, 나는 내가 살아온 삶도 이러했구나 알아졌다. 고통과 불안이 올까 봐 온몸에 힘을 주고 살았다.

나한테 고통과 불안이 와서는 안돼, 라는 생각, 그 순간 몰려오는 긴장의 느낌이 싫어서 끝없이 저항했다. 나는 내 삶을 그냥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내 생각으로 이러이러-해야 한다, 를 그림으로 그려두고 그렇지 않은 그림은 온 힘을 다해 거부했다. 말 그대로 삶은 전쟁이었다. 내 생각과의 전쟁. 내가 지어낸 생각과 그 생각으로 일어난 느낌과의 전쟁. 나와 나 사이의 전쟁. 누구도 끝내줄 수 없는 내가 일으킨 전쟁.


어떤 생각이 피어오른다. 어떤 감정이 밀려온다. 나는 어떻게든 해결해보려 벌써부터 태세를 갖춘다. 오기로 작정한 고통과 불안을 허술하기 짝이 없는 나의 태세로 어찌 막아낼 것인가. 게스트하우스의 늦은 밤, 온몸에 힘을 빼고 대자로 누워 항복했던 그 순간을 떠올린다. 어떻게 해도 안 되는 코너에 몰렸을 때, 그때 비로소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것과 하나가 되고, 그것은 나를 통해 해야 할 경험을 하고 떠나간다. 전쟁으로 피 흘리고 진이 빠진 뒤에 받아들일 것인가, 오면 오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를 스쳐가게 할 것인가.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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