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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이모 Mar 03. 2023

좋은 헤매임


오늘의 윤상이 어린 날의 윤상에게 들려주는 Re: 나에게, 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노래다. 우선 윤상이다. 윤상. 천재 뮤지션. 묘하게도 윤상을 떠올리면 바흐가 떠오른다. 그의 음악은 무려 20~30년 전 작사, 작곡된 곡들조차 지금 들어도 세련되고 우아하다. 몇 백 년 전 바흐의 음악이 그러하듯이. 내 인생에서 가장 음악을 많이 듣던 시절, 그러니까 음악이 밥도 먹여줄 것 같던 시절. 노래가사를 쓰는 꿈도 꾸던 시절. 나에게 양대산맥의 뮤지션이 있었으니 신해철과 윤상. 이 두 사람을 빼놓고 나의 감수성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중에서도 윤상. 윤상의 노랫말과 아름다운 멜로디는 감수성으로 칠갑을 둘렀던 나의 소녀 감성을 뒤흔들곤 했다.


"지금 너는 힘들고 외롭겠지만 지금의 그 고통들이 너를 자라게 해서  다른 사람들을 감격시킬 거야. 네 미래를 기대해." 


<잘 지내나요 청춘>이라는 책에 이런 문장이 있다. 어떤 시기의 어떤 문장은 몸의 어딘가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걸까. 그러니까 내 팔에, 내 손에, 내 넓적다리에 그 문장이 스며들어 나를 호위해 주어서 그 시절을 건너올 수 있었던 걸까.


책상 앞에 붙여둔 이 문장을 보고 주저앉아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내가, 이 힘든 시간이.. 정말 나를 자라게 할까. 감격과 미래... 그런 단어는 생각지도 못했던 시절. 불안감 생동하게 팔딱이던 청춘의 시기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잘 지내기만 한 청춘에는 '청춘'이라고 이름 붙여주고 싶지 않을 정도로.


긴 시간 잊고 있던 이 문장이 떠오른 건, 윤상의 Re: 나에게, 를 듣고 나서다. 그 시절의 나에게 지금 나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그때 울었던 내 모습이 나를 웃게 하지는 지만, 그때의 나를 안아줄 수는 있게 되었다고. 그 이후에도 마음으로 조용히 우는 날들 더러 있지만, 생각지도 않은 선물 같은 인연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고 말해줄까.


미래의 너는,

여전히 헤매고 있지만 '좋은 헤매임'중이라고.  

다른 이들을 감격시키기보다 나 자신을 감격시키고

나 자신을 더 사랑하기 위해 헤매고 있다고.

그런 지금의 내가 나는 참 좋다고.

그 때의 그 사람과 공간과 날들을

사랑하기를 멈추지 말라고.  




_

Re: 나에게


이 노랠 부르고 있을 어느 날의 나에게

고마웠다고 얘기해주고 싶어

그때 울었던 네가 나를 웃게 한다는

비밀 얘기를 네게 해주고 싶어

가장 어두웠던 날도 너의 하루는 너무도 소중했다고

지금 다 모른다 해도 너는 결코 조금도 늦지 않다고


다만 더 사랑해도 괜찮아

지금 네 모습과 너의 사람들을

한 번 더 날 믿어줘

전부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무얼 모르는 건지, 알아야만 하는지

하루도 못 가 바뀌는 생각들


아름다운 고민인 거라는 무책임한 얘기들

아마 조금 더 어려워질지 몰라

누구를 사랑하는지, 또는 누가 나를 사랑하고 있는지

지금 다 알 수 있다면 조금 덜 아플 건지 더 아플 건지


거짓말한 적 있나요, 위로하고 싶은 좋은 마음으로

지금만은 아니야, 너에게만큼은 단 한 번도

한 번 더 기다릴게

어느 날의 답장을, 그때 얘기를

언젠가 너와 나의 얘기가

어떤 화음으로 만날 수 있기를

어쩌면 우린 이미

그런 걸 지도 몰라, 듣고 있을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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