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겠다고 해놓고 안 하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하고자 하던 열망은 하지 않고 있음을 자책하며 두려움을 키우는 시간이 되지요. 꽤 오래도록 같은 자리에서 머무르는 느낌. 잘하고 있는 부분보다 못난 부분만 돋보기로 들여다보다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시간들..
그렇게 서성이던 즈음 만난 선생님
항상 내 키자람을 바라보게 해 주는 분
따뜻한 말로 이만큼이나 자랐네, 흐뭇해하는 분
올챙이 시절의 나부터
머리 꽃 달았을 때의 나를 거쳐
지금의 나가 되기까지
한결같이 바라봐주신 분
맛있는 거 먹어, 다 사줄게 하는 분
선생님, 그런 생각을 했어요.
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제가 틀렸어요.
선생님을 만나려면 한 분이 스스로 생을 마감해야 했고요,
그 가족들이 힘드셔야 했고요, 회사 전체가 멘탈이 나갔어야 했고요...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 슬픔들, 사랑의 마음들..
한 사람이 아니라 온 우주가 차곡차곡 자기 자리를 살아가는 것으로
한 사람이 한 사람과 인연 맺게 해 준 거였어요.
그래서 제가 틀렸어요.
한 사람이 아니라 모두의 삶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것이지요.
어떤 의미에서 이건 제 삶이 아니지요.
한 편의 연극이 주인공만의 것이 아니듯
한 사람의 삶이면서 모두의 삶인 것이지요.
고요히 요동치며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지요.
비단 선생님과의 인연만은 아니겠지요.
그러니 공손하게 제게 온 인연을 맞이합니다.
그 인연 뒤에 은은한 배경처럼 자기 삶을 성실하게 살고 있는수많은 존재에게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저는 다시 나아갑니다.
삶이란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라 믿으며
그 과정 과정을 잘 경험하면서.
언젠가 선생님이 꿈꾸는 청년들의 공간에서
제가 잘 쓰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인연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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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사진 찍기에 취해있던 시절, 갖고 싶지만 돈이 없어 못 샀던 사진집, 고 전몽각 선생의 유작 '윤미네 집'. 어느 날, 선생님이 선물로 건네주셨어요. 아무도 돈 주고 사진집을 사지 않던 시절.. 내 마음을 읽는 사람도 있구나, 기쁘게 놀랐던 기억. 산타 같았어요. 책 표지도 빨간색. 평생 잊지 못할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