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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이모 Jan 27. 2023

사랑은 귀를 통해 온다

우리는 이야기 나누다가 사랑에 빠지곤 한다. 첫 끌림이 다른 요소에 있었다 한들, 대화없이 이어지는 사랑은 없다. 귀기울여 잘 듣다보니 사랑에 물들게 되고, 사랑에 빠지면 상대의 모든 것이 궁금하여 잘 듣게 된다. 


잘 듣는 사람, 하면 떠오르는 분이 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는 따뜻한 눈빛. 상대의 눈빛과 표정, 말의 떨림, 시선, 몸짓, 제스처를 오감을 통해 흡수하는 듯한 몰입. 사랑의 자세란 이런 것일까 생각하게 하는 모습.


잘 듣기는 모든 감각을 동원해야 가능하다. 감각이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여야 하니 '생각'은 살포시 내려놓아야 한다. 생각이라 함은 '얘 또 시작이네, 다음에 무슨 말하지, 그래 너 잘났다, 아 점심 때 뭐 먹지, 얘는 왜 이렇게 논리가 부족한 거야' 등등 일체의 생각을 호주머니에 잠시 넣어둬야 한다는 뜻이다. '생각'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나'를 데려가지 않는 것. '생각'이 없으면 '나'라는 생각도 없다. 나를 데리고는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상대에 대해 과거에 지어낸 '내 생각'과 듣는 순간 무수히 피어오르는 '내 생각'을 안고서는 지금 내 앞에 그에게 닿을 수 없다. '모른다'는 자리에서 보고 듣고 느껴야 진정한 그 사람의 속마음이 들린다. 깨끗한 도화지에 그려야 사물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듯이.


'듣다'와 '사랑한다'는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떼어낼 수 없는 한 몸 같다. 사랑이 어려운 만큼 듣기도 어렵다. 진짜 들어준다는 것은, 상대의 어떤 이야기도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를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그것은 사랑과 다르지 않다. 가슴으로 느끼는 '사랑'과 온 감각을 동원하여 느끼는 '듣기'는 쌍둥이처럼 닮아있다.


나를 데리고는 들을 수 없다. 

나를 데리고는 사랑에 갈 수 없다.

판단과 분별, 욕망과 저항을 내려놓고

빈 도화지로 너에게 갈 때, 

그 때 비로소 나는 너를 듣는다.

그 순간 너와 내가 만나진다.

사랑은 그렇게 귀를 통해 온다. 



_

때로는 귀가 눈보다 사물을 더 잘 봐. 

예를 들어 누군가가 행복을 가장해도

그가 내는 소리는 가장 못해. 

세심히 들으면 다 알 수 있어. 


-영화 해피투게더, '장'의 대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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