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과이모 Feb 05. 2023

넌 왜 그리 무식하냐


넌 왜 그리 무식하냐?


오래전 지인이 내게 던진 말이었다. 어떤 지역의 어느 지명을 알지 못했던 나에게, 지나가면서 했던 말이다. 얼마나 놀랐는지 운전하던 손이 떨리고 얼굴이 붉어졌다. 나쁜 짓을 하고 들킨 사람처럼.


시간이 지나도 이 문장을 지니고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쉽사리 그에 대한 원망을 거두지 못한 듯하다. 그 원망은 그의 것일까 나의 것일까.


자라면서 늘 지식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호기심 많고 평범했던 나는, 뛰어나게 학업에 두각을 나타냈던 형제들에게 치여서 어쩔 줄 모르는 유년기를 보냈다. 나 자체로 충분히 괜찮은 아이였을 텐데 아무도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다. 학교는 일렬로 아이들을 줄 세웠고, 대체로 많은 아이들에게 '절망 경험'을 안겨주었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하여, 나에게 '무식하다'라는 말이 주는 임팩트는 꽤 컸다. 만일 그가 내게, '넌 왜 이렇게 못생겼냐' '넌 성격이 왜 그 모양이냐'라고 말했다면 당시 기분이 나빴을 수 있지만 잘 흘러갔을 것이다. 왜냐, 내가 그 말에 동의하지 않으니까. 반면에 '무식하다'라는 말은, 혹시 내가 남들이 다 아는 것을 모르면 어쩌지, 하는 내 두려움을 무심코 건드리는 말이었고, '무심코'라고 말하며 넘기기엔 좀 많이 놀라고 아팠던 것이다. 원치 않지만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가 던진 말은 그의 것이기도 하지만 나의 것이기도 하다. 나의 어느 부분을 내가 못마땅해하고 있는지 비추어주는 거울 같은 말. 나의 어떤 부분을 내가 더 많이 보듬어주고 안아줘야 하는지 알려주는 길잡이가 되는 .


돌이켜보면 그는 지식에 대해서는 쿨한 사람이었다. 만일 내가 '야 너 왜 그렇게 무식하냐'라고 말했다면, 그는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야 사람이 뭐 다 알 수 있냐. 난 다른 거 더 많이 알아서 괜찮아'. 그러니까 그는 '무식하다'라는 말이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내 가슴에 남을 것이라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에게는 1초면 흘러갈 이야기였으니까. 반면에 그는 작은 키에 콤플렉스가 있었다. 만일 내가 '야 이 땅꼬마 같은!'이라고 했으면 모르긴 몰라도 엄청 흥분하며 속으로 깊이 상처받았을 것이다. 그의 아픈 손가락과 나의 아픈 손가락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 다름을 인정하기에 우린 너무 어렸다.


만일 그때 내가, '네가 그렇게 말하는 게 나한테 상처가 돼'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괜찮은 척하지 않고 내가 만일 솔직했다면. 그랬다면 나는 지금 이 문장을 지니고 있지 않아도 되었을까. 내 이야기에 그는 움찔했을 것이다. 당황스럽고 무안해서 변명을 했을지도 모른다. '넌 뭘 그런 거 가지고 상처를 받냐' 되받아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런 학습이 되지 않았을까. 아 이 사람은 이런 말에 상처받는구나.. 다음엔 조심해야지. 그렇게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기회를 내가 그에게 주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나는 그가 충분히 누려야 할 기회를 뻔히 눈앞에 두고도 내 자존심을 챙긴다고 놓쳐버린 것은 아닐까. 언제쯤 정직함은 자존심을 이길 것인가!


그 역시 그 말을 무의식적으로 배웠을 것이다. 마치 앞면에 그림, 뒷면에 글자로 된 한글놀이 카드를 통해 이건 비행기야, 비 행 기! 하고 주입식으로 배웠듯이. 누군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말 흔적, 그 흔적을 안고 살아가는 게 우리네 말 인생이다. '넌 왜 그리 무식하냐?'라는 말은 그가 주변 이들에게 자주 들었던 이었을게다. 그도 무의식 중에 시나브로 스며들듯이 그 말을 학습했으리라. 들으면 기분 좋은 엄마의 말투를 내가 그대로 따라 하듯이. 듣기 싫었던 엄마의 말투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와 나를 당황하게 하듯이.


많은 말들이 상처의 도구가 된다. 그가 하는 말의 근원을 따라가다 보니, 말은 그의 것이기보다 그의 삶과 나의 삶이 관계되어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오늘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있는가, 나의 말을 돌아보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가 틀렸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