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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이모 Feb 11. 2023

그리움에 부쳐



'극지의 시'에서 이성복 시인은 '헤어져 있다는 것은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항상 같이 있는 상태'라고 말합니다. 그는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속 주인공 제롬이 알리사에게 보낸 편지를 인용합니다. 제롬은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여기 너와 함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편지를 보내는데요. 알리사의 답장은 이러합니다. "내가 거기서 너와 함께 있지 않니? 고마운 줄도 모르는 제롬. 단 하루도 나는 너를 떠난 적이 없어. 내가 헤어져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 상태, 다만 이 상태를 말하는 거야"


영화 해피투게더에서 장국영(보영)은 이렇게 말하는데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건 함께 있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리운 이와 함께 있다는 믿음. 쉽게 믿어지지 않지만 믿고 싶어 집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영역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이니 말입니다. 멀리 있는 사람.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사람. 이미 몸 떠난 사람. 이별한 사람. 나이 들수록 그리움의 상대가 늘어나는 것이 인생이지요. '내가 여기 있을 때 당신이 함께 있구나..' 살아가는데 이만큰 든든한 믿음이 어디 있을까요. 저는 종교는 없지만 만일 무언가를 믿어야 한다면 이런 믿음은 좀 굳건하게 믿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워하기보다 함께 있음을 충만하게 느끼며 하루하루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최근에는 지인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는데요. '요즘 너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니? ' '요즘 너에게 가장 간절한 것은 무엇이니?' 그에게 물었지만 내가 나에게 물었던 질문.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들'이라고 복수형으로 해 놓고 가장 그리운 사람 한 명을 몰래 숨겨놓습니다. 혹시 잘 숨겨졌을까요. 저는 기다림에 익숙합니다. 잘 기다립니다. 익숙하다고 좋아하는 것은 아닌데.. 하면서도 기다립니다. 너무 간절하면 등 뒤로 두려움이 드리워질까 봐, 그 두려움 때문에 더디 올까봐,너무 간절해하지도 못합니다. 간절해지지 말라고 호통을 칩니다. 그러면 제 간절함이 움찔하기도 하고요.


주말 아침, 카페에 나와 커피를 주문하니 커피가 나옵니다. 커피를 주문하면서 간절했던 적은 없었는데 커피는 늘 나에게 옵니다. 커피를 주문했으니 커피가 나오는 이 평범한 기적에 비밀이 숨겨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커피 주문하듯이 의심 없이 기다립니다. 겨울 다음 봄. 계절의 순서를 의심하지 않듯이,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희망'이란 단어를 좋아합니다. '망'자는 '바랄 망'인데요. '바라다'라는 뜻 외에도 '기다리다' '기대하다' '그리워하다'라는 뜻을 함께 품고 있지요. 희망 속에 '그리움'이 들어있다니 놀랍지요. 편안한 믿음과 평범한 희망으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기다립니다.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은 채 기다립니다.


스며들 듯 봄이 왔습니다.

누군가 기다려 준 덕분입니다.

기다림이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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