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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이모 May 20. 2023

다시 돌아온 계절

나는 좋아하는 작가들을 계절과 연결해 그 계절에는 그분 작품을 더 많이 읽고 음미하는 편. 의미 부여하기 좋아하는 요상한 성격으로 볼 수 있지만 작가들을 만나는 나만의 방식, 의식이라고 해도 좋겠다. 나의 사계절을 채워주시는 피천득, 이해인, 정채봉, 박완서 선생님. 그분들의 작품은 생동하는 언어로 계절마다 나를 지금 여기에 살도록 깨운다. 네 분 다 가톨릭이란 공통점이 있다. 유년시절 천주교 신자로 살아와서 자연스럽게 가톨릭 배경을 지닌 분들의 작품을 접했던 것 같다. 지금은 특별히 어떤 종교의 테두리 안에 나를 묶지 않아서 종교색을 지니고 있지 않지만 유년시절의 흔적은 내 피에 흐르고 있을게다.


오월의 봄이면 떠오르는 고 피천득 선생님.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라는 <오월>이란 시를 우리에게 전하고, 97세의 나이로 태어났던 5월에 몸 떠나신 선생님. 소녀 시절, '인연'이란 수필을 수십 번 읽으며 얼마나 '인연'이란 단어를 곱씹고 곱씹으며 살았는가 말이다. 선생님은 5월과 깊은 인연을 맺고, 영원한 소년으로 내 가슴에 살아숨쉰다.


7월의 여름, 치자꽃 향이 퍼져올 때 떠오르는 이해인 수녀님. 엄마는 칠순이 훌쩍 넘은 지금도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필사하신다.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내가 모든 사람들을 꽃을 만나듯이 대할 수 있다면"이란 소중한 문구로 내 가슴에 함께 하시는 수녀님. 바람 부는 여름날, 언덕 위에서 광안리 바다를 내다보며 꽃을 노래하는 수녀님 모습이 그려지며 내 마음에 사랑이 스르륵 배어온다.


바람 스산한 가을이면 떠오르는 동화작가 고 정채봉 선생님. 맑고 투명한 사람은 하늘에서 일찍 알아보고 데려가는 걸까. 54세의 나이에 몸 떠나신 선생님을 만날 수 있다면, 따뜻한 밥을 지어드리고 싶다. 밥 한끼로 그에게 받은 동심의 마음 빚을 갚고 싶다.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와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는 내 인생책이기도 하다.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이라는 시 구절 중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를 읽고 얼마나 울었던가. 어머니는 정채봉을 열여덟에 낳고 스무 살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엄마를 만나셨을까. 


겨울의 정중앙, 1월이면 떠오르는 깊고 치열하고 맑은 고 박완서 선생님. 남루하고 척박한 시대에 '문학 때문에 가슴이 울렁거리고 피가 맑아진 느낌'이라고 표현하시며 한국문학이란 꽃밭에 무수한 소설꽃, 산문꽃을 빈틈없이 채워주고 가신 선생님. 선생님의 산문집은 잎차의 세 번째 잔을 마신 듯 깊고 은은하다. 차 한잔 대접하고 싶은 당신을 영영 뵐 수 없다. 내가 태어난 날 몸 떠나신 분. 누군가의 기쁜 날이 누군가에게 슬픔이 되기도 하는 것이 인생일까. 인생의 다른 말은 인연이기도 할까.


인생이란 스스로를 알아가는 과정 중에 뭔가 알 듯한 시절이 되면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하는 신비롭고 잔인한 아름다움일까. 같은 숙제를 받아들고 먼저 살아 간 작가들에게 깊숙이 묻고, 내 안에 답을 찾아가는 이 여정을 아름답게 이어가는 것이 내 원함이구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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