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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이모 May 09. 2023

오월의 이모



좋은 이모가 되는 건 어렵지 않다. 가끔 만나서 고여있던 사랑을 몰아주면 된다. 이들과 함께 있을 때 내가 하는 게 있다면, 눈 맞추고 이야기하기. 우와~ 하고 감탄하기. 손잡기. 안아주기. 호기심 가지고 질문하기. 정성껏 듣기. 귓속말하기. 헤어질 때 몰래 쓴 편지 숨겨놓고 오기.


가장 중요한 건 함께 있는 순간에 '진짜 함께 있기'인 것 같다. 어린이에겐 당연한 일이지만 어른들에겐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 아이들은 함께 있음 섬세하게 느끼며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듯 하다. 하긴 어린이들만 그러하겠나. 어른들도 다 느낀다. 말로 표현하지 않을 뿐 다 느끼고 있다.


동네 문구점에 같이 가는 길. 저어기 멀리 문구점에 가보고 싶다 한다. 신호등을 다섯 번도 넘게 건너야 갈 수 있는 곳. 두 손 꼭 잡고 산 넘고 물 건너 다녀오는 길. 작은 인형, 포토 카드집, 연필꽂이.. 귀엽고 앙증맞은 작은 물건들. 이모가 사 준 선물을 소중히 품고 걸어가는 작은 사람을 내려다보며..나도 저렇게 작은 것들이 너무 소중해서 들여다보고 만져보고 그랬던 시간이 있었지... 어린 나를 만나는 느낌. 문방구 너머를 쳐다만 보던 자그마한 내 손을 다정하게 잡고 들어가, 천천히 둘러보고 갖고 싶은 거 다 골라..라고 말할 수 있는 부자가 된 기분. 어른인데 마음씨도 좋은 괜찮은 어른이 된 기분..


돌아오는 길, 날이 무덥다.

이모, 너무 덥지. 너무 멀리 갔다 왔다. 이모 너무 힘들겠다. 우리 너무 멍멍이 고생했다, 한다 :)

빙그레 웃으며 아이스크림 사줄까? 목마르니까 음료수 사줄까? 영이는 뭐가 좋아?물었더니 


난.... 이모가 좋아, 한다.


쿵..


이러기 있기 없기! 이렇게 스윗하기 있기 없기:)

가슴에 순식간에 차오르는 사랑.


어린이에게 사랑받는다는 건, 어린 시절 나에게 사랑받는 것. 내가 괜찮은 어른으로 자랐다는 증거.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는 법을 아직 배우지 못한 순수함에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진다. 감추는 것 없이 빛 그대로 드러나는 아이들의 사랑은 오월의 햇살처럼 찬란하다. 사과나무 꽃이 피어오르는 오월에 꼭 해야 할 일은 이런 것이겠다. 사과를 베어 물기 전 순수한 가슴 그대로인 어린이 쪽에서, 머리로 의심하는데 익숙해진 어른 쪽으로 흘러들어오는 사랑의 강물에 마음껏 물들 것, 그 사랑을 다른 어른에게 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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