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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이모 May 30. 2023

'알았다'라고 말해주었다



인생을 살면서 선택의 순간에 아버지는 내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 내 이야기를 찬찬히 듣고는, 한마디. "알았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교육철학인 듯한 아버지는, 내 선택에 크게 끼어들지 않았다.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던 무심하고 단단한 말. "알았다." 네가 알아서 잘 생각했겠지..가 포함된 단어라는 걸 모르지는 않았지만 때론 무관심으로 오해하고 서운해하기도 다. 이제야 어렴풋이 알아지는 것. 자식의 일 앞에서, 좀처럼 허둥대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고 선택을 기다리고 존중해 준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의 '알았다'는 믿음이기도 했고, 존중이기도 했고, 기다림이기도 했고, 설령 너의 선택이 가시밭길일지라도 기꺼이 잘 해낼 것이라는 응원이기도 했다. 그 모든 '알았다'는 빈틈없는 사랑이었다. 그의 사랑이 나를 '나꽃'으로 피어나게 했다. 장미로, 매화로 피어나길 바라는 마음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피어날 수 있게 공간을 두고 바라봐주었기에 지금의 나,로 살아간다. 이제 내가 그에게 '아빠가 원하는 것은 뭐예요?" 묻고 그것이 무엇이든 "네"하며 사랑할 시간이다. 그가 씌워준 하늘 같은 우산을 그에게 씌워줄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기를. 


아버지, 당신을 향해 내 마음 우산을 활짝 펼칩니다.




미야모토 테루, <그냥 믿어주는 일>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어떤 특별한 감상을 품게 된 것은 내가 부모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소설을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나는 최근 들어 깨달았다. 아버지와의 추억은 다양한 것이 복잡하게 뒤엉켜 한 마디로 표현하기가 불가능하지만, 나는 나를 흠뻑 사랑해 주고 어떤 인간이라도 좋다, 무사히 자라기만 해 다오, 하고 계속 빌어준 사람이 이 세상에 있었다는 사실을 필설로는 다하기 힘든 감사의 마음으로 떠올린다.

p.17


나는 어린 시절 공부를 싫어했고 운동도 잘 못했고 친구를 사귀는 것도 서투른 데다 제멋대로에 울보에 병약하기까지 했다. 가정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담임선생님이 물을 때마다 아버지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사람을 배신하지 마라, 남의 것을 훔치지 마라. 이렇게만 교육하고 있습니다. 매화나무에서는 장미꽃이 피지 않습니다.”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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