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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이모 Jun 07. 2023

저녁밥상에 사랑을 차렸다


나는 요리에 서툰 편이다. 안 하는 버릇이 들다 보니 자신이 없는 게 솔직한 심정. 돈만 주면 사 먹을 수 있는 시스템에 잘 탑승하며 사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손님을 초대할 때는 시간을 들여 요리를 했다. 뿌듯하긴 했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효율적이지 않다는 생각에 요리 자체를 즐기지는 못했다. 그러다 보니 혼자 있을 때는 대강 먹었다. 아무렴 어때. 몸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은 것을. 그 시간에 책을 읽거나 생산성 있는 걸 해야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혼자 지내면서 더 이상 바깥 음식은 싫다고 몸이 반항하기 시작한 지는 꽤 되었다. 엄마가 해 준 것 같은 음식을 넣어달라고 아우성치는 세포들을 달래며.. 몸이 많이 아팠던 어느 날, 나는 스스로를 위해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책 속에 '지식'이 있다면, 도마 위에는 '사랑'이 꽃피고 있었다. 씻고 썰고 다듬고 데치고 볶고... 요리는 칼이나 불을 이용하는 행위이기에 생각에 빠질 경우 나 같은 초보자는 원치 않는 경험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는 연습, ‘요리'는 지금 여기에 머무르는 마음 챙김을 하기에 가장 좋은 도구였다.


요리할 때는 평소보다 천천히 나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집중한다. 재료를 씻을 때는 재료를 만지는 감촉에 집중하고, 재료에서 풍기는 향기를 맡아본다. 채소나 고기를 썰거나 다질 때는 썰어지는 소리에 집중한다. 도마 위에서 썰어지는 장면에 집중하면서 지금 여기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온전히 몰입한다. 재료를 볶거나 저을 때, 반복적인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한다. 중요한 것은 서두르지 않는 것. 요리를 할 때는 요리하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일의 전부. 다른 어떤 것보다 지금 음식을 만드는 일이 나에게 가장 중요하다는 최면. 어제 왜 그랬는지, 내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할 겨를이 없는 지금 이 순간으로의 몰입. 그토록 찾던 '내 생각으로부터의 자유'가 요리 속에 있었다.


내가 읽은 많은 책에 수많은 현인들은 대체로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와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 나는 '요리'를 통해 지금 이 순간에 전념하는 자유를 누리고, 말로만이 아닌 행위로써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누군가를 위함이 아닌 나 스스로 내 몸을 사랑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위. 사랑은 생각이 아닌 행동이며 관념이 아닌 행위라는 사실요리를 통해 배운다.


나는 여전히 요리에 서툴지만 이제 요리하는 시간이 '사랑'이라는 것을 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새벽부터 일어나 주방을 여는 세상의 수많은 그녀들의 사랑 덕분에 세상이 굴러가고 있음을 안다. 그리고 이제 내가 에게 그 사랑을 줘야 한다는 것을 안다. 힘들고 아픈 날에도, 장을 보고 밥을 하고 상을 차리며.. 기대어 울고 싶은 나에게 따스한 국물을 먹여주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자라면서 넉넉하게 받지 못했던 사랑을 나 스스로 저녁 밥상에 차려주는 것이 어른이라는 것을 안다.


언젠가 나는, 내가 나에게 요리를 해주기 시작하면서 내 삶이 바뀌었다고 말할지 모른다. 나 스스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는 의미이겠다. 이제야 비로소 나와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이 느낌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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