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많던 20대 시절, 그 친구랑 있으면 그냥 좋았다. 다 괜찮아질 것 같은 느낌. 안심되는 느낌. 이제는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지만 그때 그녀의 명랑한 위로가 늘 나를 잡아주었다. "무슨 걱정이야? 너는 다 가진 사람이야." 그 말을 들으면 그렇게나 위로가 되었다. 현실적으로 내가 다 가진 게 아니란 건 명백했지만 그 말은 어두운 터널의 시간을 버티던 나를 잡아주는, 든든한 말 기둥이었다. 허우적대다가도 그 기둥 하나가 잡히면 안심이 되었다.
그 시절 나는, 늘 내가 부족하게 느껴졌다. 무엇이든 더 나은 것, 더 잘난 것을 가지고 싶어서 고궁분투했다. 어린 시절 부모님 한 분을 떠나보낸 친구는, 내게 당연히 가지고 있는 것들을 거울로 비추어주었다. 엄마가 엄마 자리에 있고, 아빠는 아빠 자리에 있고, 언니는 언니답게 싸움을 걸고, 동생은 동생답게 거추장스럽고. 당연해서 당연한 줄도 모르던 철없는 삶이, 당연하게 가지지 못한 아픈 삶이 전하는 위로의 말로 그 시간을 건너온 것이다. 자신의 부족을 배경 삼아 나를 더 크게 봐주었던 그녀의 마음씀 같은 것을 당시에는 잘 느끼지 못했다. '나'로 가득 찼던 시절, 너의 마음보다는 너의 말에 힘이나 얻으려던 연약하고 어린 나로 어지럽혀진 시절.
지금은 먼 나라에 사는 그녀. 이제 '너는 다 가진 사람이야'라고 말하지 않지만 그녀 목소리만 들어도 안심이 된다. 인생의 어느 시절, 부족하고 서투른 나에게.. 나도 믿지 못하던 나에게 '넌 다 가진 사람이야'라고 말해주던 사람. 본인이 얼마나 나를 살렸는지 천연덕스럽게 잊어버린 고마운 사람. 그 뜨거운 이가 바다 건너에 존재한다는 것이 나를 안심되게 하는 것이다.
마음 아픔에 오래 절여져 있던 네가, 마음 쓰는 줄도 모르면서 내게 주었던 그 마음을 이제야 떠올리니, 가슴 어딘가 설컹하다. 여름인데도 왜 가슴이 서늘한 걸까. 마음 아픈 사람이 원래 자기 귀퉁이의 슬픔을 가지고 타인을 안아주는 법이지. 너는 나를 따스하게 안아주었지.
다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를 그 시절보다 열 개는 더 댈 수 있는 지금도, 나는 가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문장을 힘주어 말하던 너의 입모양을 떠올린다.
맞아. 나는 다 가졌지.
나는 너라는 빛나는 문장을 가졌지.
네가 살고 있는 그 먼 나라로 가는 꿈을 꾼다. 외롭게 서 있는 너를 떠올린다. 네가 많이 보고 싶어 하는 네 가족들이 네 곁에 다 있는 꿈을 꾼다. 행복하게 웃는 네 모습을 상상하며 가득 차오르는 가슴을 느낀다.
비행기를 두 번 타야 갈 수 있는 그곳. 오늘 밤은 항공권을 검색하면서 잠들어야지. 눈을 감으면 네가 있는 그곳의 공항이 아니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이곳 공항이었으면. 너의 웃음과 눈물, 외로움과 슬픔 모두 다 사랑으로 품어준 채로. 너를 다 가진 채로 돌아오는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