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을 앞두고 있는 분이었어. 21년 6개월 일했어요. 직장생활 오래 했죠. 간신히 타인과의 비교를 그만둔 이후, 전성기 때의 자신과의 비교를 멈추지 않던 분께, 내가 한 말이 뭐 별 거 있었겠어. 인생 전반전도 아직 안 끝나신 거 같은데요. 고향 바닷가에서 재즈 음악 흘러나오는 작은 펍 하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20대의 하루키처럼. 지금이 그때인가 봐요. 삶이 여기로 잘 데려왔네요. 이제 자기 욕망에 충실해보면 어때요.
그 말에 안심이 되었데. 그래도 된다고 한 명쯤은 말해주길 바라서였겠지? 입 발린 말이 아니라 진심이라 통했겠지. 문득, 15년 직장생활 마침표 찍는 날 스승님이 내게 해 주신 말씀이 떠올랐어. 잘했구나. 마지막 남은 한 마리 양을 낭떠러지에 떨어뜨렸구나, 그게 없어야 너로 살지. 진짜 너로 살아가거라. 그때 나는 얼마나 안도했던가.
가끔 너를 보면 무거운 짐을 지고 기차에 타고 있는 사람 같아. 기차에 탔으니 내려놓아도 되는데, 기차가 잘 싣고 가 줄 건데 자기가 들고 있어야 한다고 고집부리며 그 무거운 걸 들고 있는 딱한 사람. 살아온 삶을 돌아봐. 이렇게 애도 써보고 저렇게 애도 써 봤지만 그저 그때그때 살아졌잖아. 내 생각대로 된 것도 있고 안된 것도 있잖아. 그런데 여기까지 잘 왔잖아. 안심해도 돼. 옳은 방향으로 잘 가고 있어. 지금 여기 주어진 매일, 매 순간을 충실하게, 그리고 가볍게 살아가면 돼. 삶을 믿어봐. 네가 지어내는 생각보다 너를 더 염려하는 게 삶이라고 믿으며, 너 자신을 온전히 삶에 내맡겨봐. 그리고 진짜 네 가슴이 원하는 삶에 한 걸음 더 다가가봐.
그거 알아. 사람들은 혼자 의자에 앉아있는 순간조차 긴장하고 있어. 그냥 앉아 있는 것 같지만 모든 근육은 의자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열일중인거지. 양쪽 어깨를 부풀어 올리고 긴장된 표정으로 앉아있는 너의 어깨를 부드럽게 풀어주며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여기는 안도의 세상. 홀딱 내려놓는 세상. 너의 긴장을 순순히 내 노으라. 이건 명령이다! 그리고는 다정하게 이렇게 속삭이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