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사과이모의 북클럽'에서는 고명재시인의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산문집을 읽으며 훈훈한 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이번주 숙제는 '나를 키워준 단 한 사람'에게 편지 쓰기였는데요. 편지 낭독은 처음이라고 부끄러워하시더니 읽으면서 오열... 듣는 분들은 훌쩍훌쩍으로 시작했다가 눈물 줄줄줄... 오랜만에 다 큰 성인들이 단체로 울어보는 기적을 경험했지요. 깨끗하고 맑은 눈물. 눈물을 흘리면서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더라고요.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흘린 눈물이라서 그런 걸까요.
북클럽 토론 주제를 공유드려 보아요. 저희 눈물 흘릴만하지요? :)
1. 나를 키워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편지나 작은 메모로 적어보시고 북클럽 분들께 나누어 주세요. (이번 생을 마치게 된다면, 이 사람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라고 생각되는 단 한 사람!)
2. 만일 내가 부모님(키워주신 분들)의 엄마로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사랑을 주고 싶으신가요?
3. 시인은 인간의 몸 중에 '어깨, 입술, 무릎, 입김, 손목, 옆구리, 겨드랑이' 등 특정 부위에서 사랑을 발견하는데요. 내가 생각하는 '사랑'을 담은 몸의 부위는 어디인가요?
세 번째 주제도 참 아름답지요? 태어나서 한 번도 이런 생각을 안 해보고 죽을 수도 있는데 시인들은 우리로 하여금 이런 아름다운 생각을 해 보게 하는 마법사 같은 존재들! 모두가 돈, 성공, 명예의 땅인 동쪽으로 내달려갈 때, 서쪽도 있어! 서쪽에는 사랑이 있어, 하고 나지막하게 손짓해 주는 존재들. 우리는 운이 좋게도 내달려가던 한 해의 마지막 지점에서 잠시 뒤를 돌아보았고요. 아, 저쪽에는 사랑이 있구나! 사랑 쪽으로 한 걸음씩 가 보고 있는 중이지요. 멤버들의 답변이 참으로 아름다웠답니다. 손가락과 손끝, 손목, 체온, 배(위장), 목소리, 눈빛, 눈두덩, 발가락, 젖은 머리칼.... 이유를 듣는 순간, 우리에게 사랑을 발견하는 힘은 언제나 있구나! 사랑은 늘 여기 있구나, 란 생각에 뭉클했고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손끝으로 살살 만질 때의 따스한 촉감, 차가운 내 손을 꼭 잡고 잠드는 사랑의 마음, 자꾸만 잡고 싶은 통통한 손목,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게 해주는 손가락, 사랑하는 이의 배를 살살 어루만질 수 있는 손바닥, 밥은 먹었나.. 먹이고 배 불리고 싶은 마음, 눈빛이죠 눈빛! 단호하게 말하던 반짝이던 눈빛... 나란히 놓인 가족들의 발가락.. 저에게 사랑을 담은 부위는 젖은 머리칼이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날 것의 나. 머리를 말려주면 상대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듯해요. 사랑받고 싶은 어린이의 마음. 만짐과 만져짐. 무방비 상태의 우리가 서로에게 가장 큰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지요.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그럴듯했던 밤. 사랑을 담은 밤이었습니다. 다음 주에는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시 낭독회가 기다리고 있고요. 그다음 주에는 시인님과 함께 하는 송년특집이 반짝이고 있지요. 어쩔 수 없어요. 이제 우리는 서쪽의 사람들. 손수건 들고 여기야, 손짓해 주는 사랑에 점점 시며 들고 있답니다.
p.s 북클럽 분을 만나 성탄 선물로 시집을 드렸는데요. 그분은 선물로 복권을 사 오셨더라고요. 시집과 복권. 와, 이 무슨 놀라운 조합인가요. 시집을 드리고 복권을 받아오다니요. 저는 시집이 더 효용적이고 경제적이라고 생각하는 서쪽의 사람. 시를 읽고 사랑에, 진리에 가까워지는 것이 더 남는 장사라고 믿는 사람. 그럼에도 복권 당첨자 발표가 언제인지 검색하는 동쪽도 사랑하는 사람 :) 복권이 당첨되면 그 돈으로 시집을 많이 사면 된다고 믿는 동과 서를 공평하게 사랑하는 사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