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성경의 이야기가 있다. 늘 곁에 있던 큰아들보다 집 떠났던 작은아들이 빈털털이가 되어 돌아왔을 때, 크게 기뻐하고 환대한 아버지의 이야기. 선생은 앙드레 지드의 '탕자, 돌아오다'라는 책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한다.
'길 잃은 양은 자기 자신을 보았고 구름을 보았고, 지평선을 보았네. 목자의 엉덩이만 쫓아다닌 게 아니라, 멀리 떨어져 목자를 바라본 거지. 그러다 길을 잃어버린 거야. 남의 뒤통수만 쫓아다니면서 길 잃지 않은 사람과 혼자 길을 찾다 헤매 본 사람 중 누가 진짜 자기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겠나.' 그리고 덧붙이 듯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집 나갔다 돌아온 아들이 아버지에게 차마 못 한 말을 어머니에게 이렇게 고백하였다고. '나는 아버지가 잡아주는 기름진 양보다 가시밭길 헤매다 굶주림 속에 따먹은 썩은 아가베 열매가 더 달았어요'라고.
너답게 존재하고 있느냐고 그는 맹렬하게 독자에게 묻는다. 저 홀로 낯선 세상과 마주하라고, 단호하게 내리치며 말한다. 이 질문이 묵직한 이유는, 다른 이가 아닌 '이어령'선생의 질문이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눈부시게 자기 존재성을 발휘하며 한 생을 살아낸, 살아가고 있는, 스러지고 있는 한 존재가 하는 질문이기 때문일 것이다.
1934년생, 암투병 중인 89세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마지막'이라는 이름이 붙어있기 때문에 특별하지는 않다. 오히려 '마지막 수업'이란 책 제목 자체가 쓸모없게 느껴진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삶과 죽음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명품'이다.
독자는 죽음을 향해 전진하는, 그의 진중하고 무거운 추에 휩쓸리듯 끌려내려가다 문득,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가벼움으로 폴짝 날아가는 작은 새와 같은 이어령을 만나게 된다. 가장 작은 어린아이와 다른 의미로 가장 비워진 노인 사이를 오가는 선생을 만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삶이 선명하게 비추어진다. 나는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행복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추천하지 않겠다. 행복도 불행도 그저 깊어지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이에게 이 책을 초대한다. 뜨겁게 들끓다가, 은은하게 덥혀진 내 가슴도 함께 내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