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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괴괴랄랄 Dec 08. 2023

캐나다에서 느낀 인생 첫 외로움

 있다 없으니까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길게 표현하면 아마

'있다 없으니까'가 아닐.

근데 아무래도 그 '있다'의 주체가 단순히 존재가 아니라 내 어딘가에 뿌리를 박고 있는 정도?


사스케의 고독이든 밍숭맹숭 외로움이든

누구나 살면서 경험했겠지만

내가 가진 여러가지 자부심 중에 하나는

인생에서 외로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나에게 깊은 누군가가 내 다가 없었던 적이 없었다.

오랜 누군가가 서서히 기화된 적은 있어도.


캐나다에26년(문)or 24년(윤) 인생 처음으로 나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황열병 (Yellow fever), 인종차별
Yellow fever : 비아시아 남성(특히 백인)이 아시아 여성(옐로)에 대해 느끼는 통제 불가능한 이끌림을 가리키는 속어로 쓰인다.

나는 운동 잘하는 사람치고 겁이 많은 편이다.

싸움구경은 좋아도 싸우고 싶지는 않다.

정병 환자들과 마약 중독자가 넘치는 이 곳에서

나는 최대한 사리면서 살아갔다.

하지만 한국인 종특인지 내 지병인지

아이컨택은 고쳐지지가 않았다.

쳐다보면 나도 눈을 맞춰야한다는 유교적인 강박.

덕분에 나는 지나가는 정병 환자들에게 끝없는 대쉬를 받았다. 눈 마주치면 사랑인줄  병신마냥;

내가 가장 혐오스러웠던 건 정신이 온전한데

저 동양인 여성을 만만하게 보는 외국인들이었다.

나에게 중국인...ㅋ이냐고 물어

 아시안을 사랑한다며 끊임없이 병떪.

그냥 무시하면 되는건데

 증맬 도저히. 나는 중국인이 될 수는 없는 거였다.

I am 코리안이에요


말을 섞으니까 신났던건지 나를 끌어당기고 50달러를 쥐어주면서 뽀뽀하자고 염병 떤 기억이 생생하다.

 50달러...하ㅏ하하하하

캐나다 물가로 엽떡에 허니콤보도 못처먹는 가격.

이게 인종차별이고 멸시고 조롱이다.

세큐리티에 처넘겨 버렸는데도 분이 안풀렸다.

전화할 사람이 없었고 나를 지키러 와줄 사람이 없었다.

그 때 휴대폰을 쳐다보는데 참 외로웠다.


ㄹㅈㄷ독감

1년에 1번 걸릴까 말까한 독감이 찾아왔다.

진짜 지랄맞고 지독했다.

옮길까봐 친구랑 밥도 못먹었다.

목소리는 안나오고 목은 찢어질듯이 아프고 열 나고 코 막히고 누가 저주인형이라도 만든게 분명했다.

있는 약은 진통제뿐이었는데 약을 사기에는 뒤지게 비쌌다. 차라리 그 돈으로 코스트코 쿠키를 사먹는게 최대장기의 최대행복이라 약을 사는 것도 망설였다.

비록 목은 갈기갈기 찢어져도 내 뇌와 눈,코,입은 행복할거니까.

별로 길지 않은 시간동안 앓았던 독감이었지만

 그 때도 외로웠다.

엄마 손은 약손인데 그게 없어서.


독감을 앓고 인종차별을 겪고 나서

나는 각별히 조심했던 것 같다.

아프거나 족같을 때 외로움이 찾아니까.


그동안 나는 부정적인 감정 = 소노, 중노, 대노 / 긍정적인 감정 = 해피 / 무념무상 이렇게 3개 중에 하나였는데 외로움이라는 카테고리가 추가되었다.

사스케가 말한 고독••

정말 부모님에게 혼난다거나 하는 레벨이 아니었음.

개마상이네 개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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