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학교는 춥다.

by 윤아 선생님

아직 남아있는 겨울의 차가움과 첫날의 긴장감까지 더해져서 3월의 학교는 춥다. 윤아는 학창시절을 떠올려봤다. 어린 윤아는 매년 개학 날 아침에 배가 아팠다. 사실 봄방학 동안 3월 첫날을 생각하기만 해도 배가 아팠다.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한 새 교실은 두려운 곳이었다. 특히 어떤 선생님을 만나게 될까 가장 걱정했다. 모르는 아이들과 어색한 인사를 하고 새로운 선생님이 만드는 교실의 질서에 적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벌써 집에 가고 싶었다. 아마 윤아의 교실로 올 4학년 아이들 중에도 윤아 같은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첫날에는 선생님도 긴장한다. 올해 어떤 아이들을 만나게 될까? 한때는 설레기도 했으나 교직 생활 10년이 넘은 윤아에게 설렘은 남아있지 않다.

하나 둘 긴장한 얼굴들이 교실로 들어온다. 머리에 까치집을 한 아이가 귀엽지만 첫날이니 표정을 관리한다. 첫날부터 웃었다가 1년 내내 후회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첫날에는 절대 웃지 않는다. 윤아는 올해의 반을 휘 둘러본다. 5, 6학년만 담임하던 윤아에게 4학년은 너무 작고 앳된 보였다. 첫날은 1년 중 가장 조용한 날이다. 친한 친구도 없고 첫날부터 혼나고 싶은 아이는 없으니 선생님이 하는 말을 열심히 듣는다. 교사는 첫날의 정숙함이 일 년 내내 이어질 이 반의 특징일지 삼일 만에 없어질 신기루일지 아직은 가늠하지 못한다. 3월의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도 혼자 떠드는 아이가 없다면 일단 안심이다 생각할 뿐이다.


개학 후 일주일을 보내면서 윤아는 4학년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업 시간에 발표하겠다고 손을 드는 애들이 많다. 심지어 발표를 시켜주지 않으면 실망한다. 음악 시간에는 노래도 부른다. 심지어 신나 하면서 부른다. 4학년은 이렇게도 적극적이구나. 근데 5학년이 되면 왜 그렇게 변하는 걸까. 4학년의 적극성에 놀라고 신기하면서도 윤아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누굴까?

유독 눈에 띄는 아이가 하나 있다. 검은색 패딩들 사이에 흰색 반팔티를 입은 아이. 난방하면 더워하는 아이들이 가끔 반팔옷을 입고 오기도 하기도 하니까 뭐.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싶지만 다시 보니 반바지까지 입었다.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아이들은 잘 살펴봐야 한다. 집에서 방치당하고 있거나 남아도는 에너지를 어쩌지 못해 한겨울에도 더워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둘 다 별로 좋지 않은 신호이므로 이런 아이들을 발견하면 일단 경계하고 관찰한다. 지우는 의자에 꽤 고가의 멀쩡한 패딩이 걸레짝처럼 걸려있는 걸 보니 집에서 보호자님들도 속이 타고 계시겠다 싶었다. 지우는 첫날부터 빠짐없이 쉬는 시간이 되면 번개처럼 달려 나갔다.

"지우야. 뛰어다니니까 친구와 부딪히잖아. 천천히 걸어 다니세요."

"지우야. 손을 들고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고 나면 발표하는 거예요."

"지우야. 수업시간에는 마음대로 돌아다니면 안 돼요. 자리에 앉으세요."

지우야! 지우야! 지우야!

윤아는 앞으로도 이 이름을 자주 부르게 되겠다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그다음 주에도 지우의 정신없는 행동 말고는 별다른 사건 없는 조용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퇴근하는 길에 4학년 1반 학년부장님을 만났다.

“부장님! 맨날 전화해서 민원 넣는다는 엄마 있잖아요, 그 애가 우리 반이라던데 누군지 혹시 아세요?”

“그럼요 알죠. 평화, 이평화예요.”

윤아를 불안하게 하는 하는 아이를 찾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이름은 평화로웠다. 벌써 2주일이 넘었는데도 평화라는 아이가 누군지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다음날 윤아는 이평화가 누군지 찾아봤다. 하룻 동안 관찰한 결과 이름만 평화로운 줄 알았던 이평화는 실제로도 평화로운 아이였다. 발표는 잘 안 하지만 조용히 앉아서 수업을 듣다가 하교했다.

“윤아 선생님 오늘 괜찮았아요?”

“네 평화로웠어요.”

이름을 이용한 개그라는 것을 알아들은 부장님은 깔깔깔 웃으며 집에 가셨다. 윤아도 조금 웃었다.


개학한 지 한 달쯤 지나자 학교도 차츰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학교 곳곳에는 꽃이 피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마음에 맞는 친구 찾기를 완료했다. 이제 어색하게 앉아서 누구와 놀까 고민하는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쉬는 시간은 도떼기시장이다. 모여 앉아서 수다를 떨거나 보드게임을 하는 아이들도 있고 지우처럼 복도와 교실을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유독 평화는 쉬는 시간에도 자리에 앉아 있었다. 평화는 고정적으로 어울리는 친구가 없는 것 같다. 워낙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라서 그렇겠지. 수줍음이 많은 아이들은 2학기가 되어서야 친구를 만들기도 하니까. 윤아는 평화에게 선생님이 좋아하는 책이라며 책 한 권을 추천해 주었다. <코드네임 X>는 책을 추천할 일이 있을 때 무조건 제일 처음 추천하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재미없다고 하는 초등학생은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총 10권의 시리즈라서 다 읽고 나서 아쉬울 틈 없이 다음 책을 읽게 되기 때문이다. 평화도 그 책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쉬는 시간마다 책을 읽는 평화를 보면서 말 그대로 평화로운 교실이라고 생각했다. 윤아가 예상한 것과 다르게 교실은 너무나 잘 돌아가고 있었다. 차츰 희망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사람이 변할 수도 있지 않나? 내가 너무 잘해서 마음에 안 드는 게 없나? 올해 운이 좀 좋을지도? 윤아는 자기 좋은 대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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