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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의 다리를 건너

by 아포드

전남 신안에 가면 섬과 섬을 잇는 다리인 '천사대교'가 있다. 2019년에 완공된 무려 10km가 넘는 이 다리는 그간 1시간을 소요해 다니던 뱃길을 10분 만에 갈 수 있는 찻길로 바꿔놓았고 섬들은 바다에 가로막힌 고립에서 연결이라는 극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된 셈이다.


없던 길이 생기자 없던 풍경이 들어서고 없던 사람들이 오간다. 마치 따로 떨어진 채 빛을 잃은 전구 같았던 섬들이 천사대교라는 전도체로 연결돼 비로소 화사한 빛을 발한다.


새삼 '길'이라는 단순한 기능이 갖고 있는 위대함을 느낄 때쯤 드는 또 다른 생각 있다. 우리는 이렇게 고립된 섬과 섬 사이에 다리를 세워 이어내는 것처럼 생각과 생각의 사이 또한 '은유'라는 다리를 세워 이어 내고 있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예술에 있어 은유란 뗄 수 없는 동반자이며 어쩌면 서로가 서로의 그 자체이기도 하다. 예술이란 누군가가 자기 혼자서만 이해하고 있던 생각과 느낌들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함으로써 성립되는 행위인데 이때 은유라는 다리가 없다면 그것들은 채 표현되지 못하고 그저 혼자만의 공상으로 고립될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없어도 먹고사는데 지장 없고 또 바쁘게 하루하루 살아내는 누군가에게는 사치처럼 느껴질지도 모르는 이 '은유'. 그러나 사람들은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은유를 하며 살아갈 것이다. 은유라는 것은 대체 뭐가 그렇게 좋은 걸까?


이를테면 은유는 맞춰도 맞춰도 끝이 없는 카드 짝 맞추기 같은 것이다. "시간은 금이다."라는 문장은 모르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유명한 은유이다. 구체적이고 눈에 보이며 만져지기까지 하는 '금'이라는 물질과 추상적이고 보이지 않으며 만질 수도 없는 '시간'이라는 극단의 두 카드가 만나 짝을 이뤄 멋지게 맞아떨어지는 순간이다.


물건과 사람도, 불과 얼음도, 삶과 죽음도 짝을 이뤄 맞아떨어지게 할 수 있는 이 무한대 경우의 수를 가진 카드게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은유는 만능이다. 언어로 은유할 수도 있지만 소리를 내어 은유하면 음악이 되고 선을 그어 은유하면 그림이 된다.


은유는 과학이기도 하다. 말보다 빨리 달리고 싶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은 자동차가 되었고 하늘을 나는 자동차의 꿈은 비행기가 되었다. 이제 'Fly Me to the Moon'은 더 이상 낭만적으로 들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은유는 파고들수록 안으로든 밖으로든 전에 없던 풍경을 우리들의 눈앞에 펼쳐내는 힘이 있다.


은유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연결하는 다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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