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서 전역을 하고 생각을 해보니 아무래도 다니고 있는 학과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퇴를 할까도 생각을 하다가 졸업장은 따두자 싶어서 결국 복학생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다시 학교에 가게 된다.
복학 첫날에 들어선 강의실은 역시나 별다른 감흥은 없었고 나와 같은 시기에 복학한 얼굴만 얼핏 아는 정도의 몇몇 동기들 얼굴이 보였다.
어차피 1년 후에는 졸업이기도 하고 몰려다니면서 술 마시기도 싫어서 굳이 아는 체하지 않고 구석에 조용히 앉는다. 그런데 잠시 후 누군가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린다.
"어?! 너도 이번에 복학했어?"
"아... 음.. 오랜만이네.."
아차... 체크무늬 셔츠에 큼지막한 안경을 쓰고 등산이라도 할 것 같은 백팩에 헬기 조종사들이나 쓸 것 같은 헤드폰을 착용한 비쩍 마른 남자.. 구석에 있는 나에게 굳이 인사를 하러 온 전형적인 오타쿠 차림의 이 남자 또한 같은 학번의 동기이다.
그리고 부디 나와 복학 시기가 같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1학년 때부터 왜인지 모르지만 나를 좋아했다.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생각이 깊고 참 욕심이 없는 사람 같다며 호감을 표하며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가급적 그를 멀리하고 싶었다. 기본적으로 눈치 없는 행동을 많이 하고 다소 옛날 사람 같은 고리타분한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극단적인 오타쿠의 차림새와 말투로 별로 재밌지도 않은 이야기를 꺼내며 큰소리로 웃거나 실로 오그라드는 개그 센스를 종종 발동시켜서 곁에 있는 나에게까지 여분의 부끄러움을 선사하고는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와 오래 붙어있으면 나까지 다른 학생들과의 교류가 끊어지고 그와 단둘이서 영영 고립될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엇 저 사람 저 오타쿠랑 절친이었어?!, 그럼 저 사람도 그런 사람이겠구나.. 어울리지 말아야지..." 하고 말이다..
결국 자꾸만 달라붙는 그를 떼어내기 위해 나는 적당한 무리에 들어가 어울리면서 그와 거리를 두려 했고 그 후 다행히 조금씩 멀어졌지만 결국 세월은 흘러 이렇게 운명적으로 다시 맞닥뜨리고 만 것이다.
"와!! 잘 됐다. 복학하고 아는 사람 없을까 봐 좀 그랬는데 네가 있어서 다행이다. 앞으로 같이 다니면 되겠네!"
"음....... 뭐.. 그렇긴 하지.."
별로 반가워하지 않았음에도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굳이 내 옆자리에 앉았고 전혀 알고 싶지 않았던 그의 밀린 이야기들을 들어야 했다. 구내식당에 갈 때도 꼭 따라붙었으며 집에 갈 때 타는 스쿨버스에서도 항상 내 옆자리를 고수했다.
그리고 그는 한 손에 늘 PMP(2002 - 2012년 무렵까지 사용되었던 휴대용 동영상 플레이어)를 들고 다녔는데 그게 바로 그의 오타쿠 룩에 있어 화룡점정에 해당하는 부분이었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재생하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유별난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치 헬기 조종사의 그것 같은 헤드폰을 쓰고 다닌 이유도 바로 그 PMP에 연결해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거기에 넣어 다니는 동영상들도 당시 기준으론 보다가 누군가에게 걸리면 창피할 법한 것들이 들어있었다. 아주 옛날 개그맨들이 나와서 개다리 춤을 추는 영상을 틀어놓고 "와하하!! 이거 진짜 웃기지 않냐?"라고 떠들거나 올드팝 중에서도 유독 유치한 느낌의 노래들을 틀고선 내 얼굴에 PMP를 들이댔으니 말이다.
내용물도 내용물이었지만 그런 캐릭터에 그런 물건을 들고 있으면 동영상 내용이 무엇이었든 창피함은 전제했을 것이다..
이대로 시간이 더 흐르면 관계가 더 단단히 굳어지고 떼어내기는 점점 힘들어질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거리를 조금씩 벌려두어야 하겠다는 생각에 어느 날 나는 평소보다 좀 더 늦게 강의실에 들어가기로 한다. 강의실 자리가 거의 다 차서 북적거릴 무렵 슬쩍 들어가서 그와 가능한 먼 자리를 골라 앉는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는 계속해서 나를 찾고 있었는지 금세 나를 발견하고는 손짓하며 나를 불렀다.
"여기야! 내 옆에 자리 있어!"
자리야 당연히 있을 것이다. 그의 옆에는 가급적 아무도 앉지 않으니 말이다. 그는 연신 나를 불러댔지만 나는 손짓으로 그냥 여기 앉아있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말이지 끈질겼고 나는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아 고개를 돌려 그를 무시했다.
그러자 잠시 후 온 힘을 다한 듯 외치는 그의 목소리가 강의실 전에 울려 퍼졌다.
"너 왜 자꾸 나를 피하는 거야!!!"
그의 외침에 소란스럽던 강의실은 순식간에 정적을 맞았다. 그리고 이내 피식거리는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