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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런 도감(대학 편 2화)

by 아포드



왜 자꾸 날 피하느냐니... 그 외침은 마치 연인에게나 던지는 애절한 언어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나의 창피함은 한도를 아득히 초과하기에 충분했다.


다행히 머지않아 교수가 강의실에 입장함으로써 그 우스꽝스러운 분위기의 꼬리는 길지 않게 잘려나갔지만 방금 전 보여준 오타쿠 동기의 나에 대한 애착은 상당히 염려스러운 것이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수업이 끝나고 책들을 챙긴다. 원래는 한 과목의 강의가 더 남아 있는 날이었지만 마침 해당 과목은 공강인 날이었고 강의실의 학생들은 뜻밖의 여가 시간을 보낼 생각에 웅성임은 한껏 시끄러웠다. 그 무렵 동기는 꼬인 헤드폰 줄을 푸느라 아직 가방을 싸지 못하고 있었다. 그 틈을 타 소음에 떠밀리듯 자연스럽게 뒷문으로 나가서 빠른 걸음으로 학교를 나선다.


교문을 나가기 전 슬쩍 뒤를 돌아봤으나 오타쿠 동기는 미처 나를 발견하지 못한 듯하다. 좀 억지스럽긴 하지만 다소 부자연스러운 방법을 택하더라도 그를 떼어놓고 싶은 마음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그렇게 교문을 지나 거리를 걷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저기 잠깐만!"


나는 당황하며 뒤를 돌아봤다.


"하아.. 하아.. 저도 이쪽으로 가는데 같이 가실래요?"


"아..."


"참.. 저는 지선이라고 해요. 같은 학년 수업 듣는 학생이에요."


어깨까지 내려오는 생머리에 알이 조금 작은 타원형 안경 그리고 수수한 옷차림의 여학생이었다. 음.. 사실 조금 촌스러운 느낌이었다. 멈춰 서서 몇 마디를 나눈다. 그녀는 말했다시피 나와 같은 학년이었고 나이는 나보다 두 살 어렸다.


"그냥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개학했는데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 다 휴학을 해버려서 혼자 다니고 있었거든요. 근데 오빠도 평소 딱히 어울리는 사람들 없는 것 같은데 같이 다니실래요?"


오.. 어울리는 사람들이 없어 보였다니 그 오타쿠 동기와 절친으로 보이고 있진 않았나 보다. 나는 못 이긴 척 그러자고 했다. 어쨌든 이 친구와 다니면 그의 접근을 막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와! 그럼 집에 가기 전에 요 앞에서 떡볶이 먹고 갈래요?"


"아~ 그럴까?"


나는 그녀와 떡볶이집으로 향했다. 학교 근처에 있는 떡볶이집인 만큼 주 고객들은 학생들이었고 옛날이긴 하지만 2천 원이면 튀김까지 해서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아주 저렴한 곳이었다. 조금은 어색한 대화를 나누며 주문한 떡볶이가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가게 창문으로 오타쿠 동기가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구부정한 자세로 PMP를 들여다보며 느릿하게 걷고 있다. 그렇게 열심히 풀던 헤드폰 줄은 여전히 기괴한 모양으로 꼬여있다. 안경알은 빛에 반사돼 표정은 읽을 수 없었지만 왠지 히죽.. 하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혹시나 마주칠까 얼른 고개를 돌리고 턱을 괴는 척 얼굴을 가렸다.




예상대로 그 여학생과의 동행은 효과가 좋았다. 여성을 대하는 데 있어 약한 면모를 보이는 그 동기는 그녀와 함께 있는 동안 나에게 쉽게 말을 걸지 못했다. 그녀는 마치 모기를 쫓아주는 여름밤의 모기향처럼 든든했다.


그러는 사이에 추가로 친해지게 된 학생들도 두세 명 더 생겨 함께 식당도 같이 다니고 조별 과제도 하면서 오타쿠 동기의 존재는 점점 잊혀졌고 오히려 생각지 못한 호재와 함께 대학 생활은 그렇게 1학기를 지나 2학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조금씩 친해지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지선'의 앙탈스러 면모였다. 첫인상은 뭔가 수수하면서 담백한 느낌이었지만 이제는 자꾸 수업 시간에 장난을 걸어오고 받아주지 않으면 앙탈을 부렸다.


물론 적당히 함께 낄낄대고 넘어갈 수 있는 수업 시간도 있었지만 결국 꼬리가 길면 밟히는 일이 생긴다. 그리고 점점 길어진 그 꼬리는 교양으로 듣던 동양철학 수업에서 끝내 밟히고 말았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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