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선로가 없으면 달릴 수가 없고 배는 바닷길이 없으면 항해할 수 없다
"그냥 쉬었음"으로 분류되는 청년이 집계 기준에 따라 40~70만 명에 육박하는 시대라고 한다. 나 또한 상당한 그냥 쉬었음 경력자로서 소견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아마도 그들의 대다수는 그저 집에 누워있는 게 좋아서라기보다는 "이상의 구체화"가 가져온 부작용에 의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근대의 한국은 자신의 이상을 구체화시키는 것보다는 사회의 톱니바퀴 중 하나로, 그리고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해내는 것에 중점을 뒀었다. 다소 자신의 존재가 희미해져도 공동체로서의 만족감을 얻으며 살아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청년들은 더 이상 스스로가 희미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에서는 자신을 주인공으로 당당하게 지목한다. 형체를 규명하기 모호한 것이 아닌 그들은 선로를 달리는 기차이며, 물길을 달리는 배이다.
앞이 보이지 않으면 걸을 수 없다
다만 가고 싶은 길이 명확한 만큼 선로와 바닷길로 향하는 좌표 또한 좁고 명확하다. 그들은 그 좌표를 찾는데 힘을 너무 많이 뺏기는 탓에 좌절하고 포기한다. 슬슬 주변에서는 너는 기차와 배가 되는 것은 포기하고 그냥 걷는 게 어떠냐는 권유를 하기 시작한다.
결국 한계점에 내몰린 그들은 어쩔 수 없기 걷기 시작한다. 걸어 나가다 보면 자신의 길을 찾을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을 안고 말이다. 하지만 이 길을 계속 걸어 나가도 마치 칠흑 속에 갇힌 것처럼 도무지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예측조차 할 수 없다면 하루하루 이어지는 막연한 나날에서의 의미는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걸어 나가다 우연히라도 자신의 길을 찾으면 참으로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언제까지 이 길을 계속 걸어야 할지 또 이 길의 끝에 내가 결국 실망하게 될 무언가가 있지는 않을지 후회해도 돌아올 수 없는 길로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온갖 고민들이 마음을 흔들어 놓게 되고, 그들은 결국 두려움에 제자리에 멈춰 서게 된다.
일자리를 찾기보다 나 자신을 먼저 찾았으면
아무 일이나 해서 돈을 벌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일을 하면서 몇 년 후에 성장한 자신이 그려지는 일은 힘든 일이어도 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일이라면 오히려 쉬운 일이라 할지라도 계속해나가기 어렵다.
막노동의 대명사로 불리는 공사현장을 예로 들어보자 상황에 내몰려 공사판에 인부로 나가더라도 돈을 벌고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같은 현장에서 모여 똑같이 힘든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그 일에서 미래를 보는 사람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은 천지 차이가 난다.
그곳에서 미래를 보고 길이라 여기는 사람은 현장에서 각종 경험을 몸소 체득해 훗날 고급 기술자로서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미래를 상상하며 고단하지만 가치 있는 미래가 주는 에너지로 또 다음날을 살아갈 수 있다. 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길 또한 아니라 판단한 사람에게는 그저 하루하루가 끔찍하고 무의미한 육체노동에 불과하게 느껴질 것이다.
현재 그냥 쉬고 있는 40만 명은 후자처럼 의미를 찾지 못해 발을 내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딱히 옹호하기도 딱히 비판으로 몰아가기도 어렵다. 그들은 그저 시간이 지날수록 길이 복잡하고 좁아지는 거대한 미로 안에서 단체로 조난당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