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한강변을 무리 지어 자전거로 질주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뭔가 구호 같은 것도 힘차게 외치면서 쌩쌩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 활기찬 것과는 별개로 다소 위협적이거나 산책길을 방해받는 느낌이 들곤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국가가 자전거 도로를 그렇게나 장려한 결과이기도 하다.
아무튼 자전거 유행을 타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자전거 인구는 자동차 도로까지 점령해 운전자들의 골칫거리가 되기도 했다. 점점 비싸고 성능이 뛰어난 수입 자전거들이 많아지면서 자동차에 준하는 속도로 달리는 자전거들이 자동차 사이를 달리며 교통을 교란시키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자라니'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자라니는 차도에 갑자기 나타나서 운전자들을 놀라게 하는 것으로 유명한 동물인 '고라니'와 '자전거'의 합성어다.
이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자전거 문화. 물론 전국적인 자전거 도로의 확충은 국민들의 건강을 증진시키겠다는 것에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목적 이외의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때로는 부작용을 넘어서 주객이 전도되는 모습도 보여준다.
자동차의 덕목 중에 승차감이라는 게 있다. 그런데 최근 그것에서 파생된 '하차감'이라는 표현이 생겼다. 즉 차에서 내렸을 얼마나 고급 차량이냐에 따라서 내리면서 받게 되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고 그 시선에서 느껴지는 뿌듯함의 정도를 하차감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씁쓸한 사회현상에 대한 풍자로 탄생한 용어겠지만 어쨌든 센스 있게 잘 지어진 용어이다. 그런데 이 하차감은 자전거 세계에서도 통용된다. 동호회 단위로 활동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보니 서로 얼마나 좋은 자전거를 타고 도로에 나타나는지에 대한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게다 자전거는 부위별로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는 소지가 많고 바꾸면 시각적으로도 티가 나기 때문에 경쟁심리를 더욱 자극했다. 처음엔 수십만 원짜리 부품을 사면서도 너무 비싼 거 아닌가 고민을 했던 사람들도 어느 순간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휠도 서슴지 않고 구매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경쟁에 휘말리지 않고 저렴한 자전거를 타겠다는 초심을 갖고 시작했어도 흔들리기 쉽다. 동호회 평균 스펙보다 미달인 자전거를 가지고 나타나면 은근히 눈치가 보이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혼자 타자니 외롭고 재미가 덜하다. 이래저래 소비를 합리화하기에 좋은 상황이 주어진다.
자전거를 파는 기업들은 신이 났다.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고가의 자전거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기 때문이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서 500-700만 원대에서 거래되던 하이엔드 자전거들은 1~2천만 원대로 가격을 올리는 자신감을 과시한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았던 자전거 세상에는 이상 징후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에게 부를 안겨주었던 고가 정책이 신규 고객들에게 커다란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이제 자전거와 각종 액세서리들의 가격은 입문자들이 선뜻 손을 내밀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고 가격에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은 상대적으로 허들이 낮고 새로운 유행을 선도하고 있는 러닝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따릉이와 같은 대여 자전거의 성공도 한몫했다. 1년권을 구매해도 3-4만 원 정도밖에 하지 않는 따릉이는 부담 없이 출퇴근, 레저 등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면서 말 그대로 시민의 발이라는 자리를 당당히 차지했기 때문이다.
1할의 자전거 마니아들에게 집중했던 자전거 산업은 9할의 일반 고객들을 놓치고 만 것이다. 이제 수천만 원을 호가하던 자전거들은 악성 재고를 소진하기 위해 40~50% 할인이라는 극단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운동이라는 단순한 의도에서 시작된 이 물결은 안타깝게도 바다로 흐르지 못하고 사람도 자전거도 길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