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완벽주의적인 기질이 있다. 그리고 완벽주의자들은 그 특성상 '만에 하나'라는 티끌조차 놓치고 싶지 않아 하는 경향이 있다. 그 모습은 어떤 때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작은 티끌조차 쿨하게 넘어가지 못하고 연연하는 소인배처럼 보이기도 한다.
만에 하나라도 그 일이 틀어지지 않게 모든 상황을 안배하는 것만이 그들을 안심시킬 수 있지만 혹은 그렇게 하고서도 '십만에 하나'를 다시 따져보기 시작하는 경우도 있으니 궁극적으로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지 않을까 싶다.
물론 완벽주의적 성향이 일터에서 발휘된다면 꼼꼼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언제나 적절한 때와 장소를 가려서 발현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완벽주의로 인해 일상에서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왜냐하면 모든 면이 완벽한 일이나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에 완벽주의라는 것은 결국 자신이 추구하는 한정된 몇 가지 항목 안에서만 성립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몇 가지에 집착하느라 결국 넓게 보지 못하고 다른 구멍에서 새고 있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보자면 주변에 위생에 굉장히 민감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집에서 설거지를 할 때 반드시 세제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었다. 수납장에서 방금 꺼낸 깨끗한 접시조차 사용하기 전에 다시 한번 세제로 세척을 한 후 사용했고 기름기가 없는 과일이나 야채가 놓였던 접시도 반드시 세제를 사용해 설거지했다.
여기까지 보면 그저 위생에 철저한 사람 같지만 자세히 관찰해 보면 치명적인 허점들이 있었다. 일단 세제를 사용해야 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혀서 세제를 마음껏 투입했지만 알다시피 주방 세제는 미끈거리면서 식기에 꽤 오랫동안 잔류하는 성질이 있다. 즉 충분히 시간을 들여 헹궈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은 정작 헹구는 것은 대충이고 물기를 닦는 것마저 누렇게 변색된 행주로 닦았다. 철저한 청결을 지향했지만 잔류 세제의 해로움과 더러운 행주에는 생각이 미처 닿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차라리 물로만 씻어서 닦지 않고 건조대에 올려두는 것보다 훨씬 비위생적으로 보였다.
완벽주의자들은 늘 불안에 쫓기고 있기도 하다. 빚어놓은 완벽함의 어딘가에 겨가 묻는다는 것은 보고 있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대적인 완벽은 존재하지 않고 상대적인 완벽은 자기 안에 갇히기 쉽다.
스스로 빚은 완벽함에 아무런 흠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저 자신의 시야가 흠들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좁아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만에 하나가 아닌 무수한 겨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그 겨들을 제거하려 하기보다는 함께 어우러지면서 어깨에 힘을 빼고 좀 더 편해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