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실 MBTI에 대해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 유행은 꽤나 오래 지속되고 있어서 별 관심이 없는 나에게조차 많은 정보들이 흘러들어오고 있다. 처음 유행하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내향형인 I와 외향형인 E의 비교가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고 그 뒤로는 공감을 못하는 T를 비난하는 "너 T발 C야?"라는 유행어가 등장하며 이성형인 T와 감성형인 F의 비교가 각종 밈을 만들어내 인기를 끌어가고 있다. 유행 안에서 또 다른 유행이 파생되고 있는 셈이다.
MBTI에서 제시하는 16가지 항목으로 모든 사람을 나눌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가벼운 우스갯소리를 나누기에는 좋은 소재임은 분명하다. T라 하더라도 사람인 이상 감성이 없지는 않을 것이고 Ff라 하더라도 이성의 끊을 놓은 채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나 또한 성분은 F이지만 디자인은 T를 취하고 타입이라 볼 수 있겠다. 마치 콩고기나 두부면 같은 것들처럼 말이다. 아마도 받아들이는 것은 F로써 받아들이고 내보내는 것은 T로써 내보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결과론 적으로 MBTI의 선상에서 T로 분류되고 있는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F가 가끔은 초능력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것은 공교롭게도 그들이 감정에서 헤어 나오는 모습에 있었다. 최초에 나는 생각했다. 이성적인 T는 불필요한 감정에 휩쓸리는 일이 적어 효율적이고 담백하지 않겠느냐고. 일부 사실이기도 하다. 감정의 전도율이 높은 F는 사사로운 감정에 휩쓸리기 쉽고 때로는 느끼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느끼기도 하니까.
그런데 최근에 발견한 흥미로운 점은 F가 감정에 쉽게 휩쓸리기도 하지만 그것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상당히 다양하고 또 유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누군가로 인해 분노와 증오 그리고 슬픔 같은 감정의 구덩이에 빠졌을 때 T는 그 구덩이의 깊이를 계산하고 각종 도구와 논리적인 설계로 계단을 만들어내고 나서야 비로소 구덩이를 탈출할 수 있다. 즉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는 답안을 찾아내지 못할 경우 구덩이에서 빠져나오기 좀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반대로 F는 원칙과 논리에 크게 연연하지 않기 때문에 T는 해낼 수 없는 방법으로 구덩이를 빠져나오곤 한다. 스스로를 기체로 승화시켜 바람을 타고 빠져나온다거나 생각만으로 구덩이를 없던 것으로 할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현상에 가까운 능력들 말이다.
이 논리와 이치에 들어맞지 않는 탈출 방법은 상처를 준 당사자마저 깊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게 만들고 마침내 용서해 낸다. 그리고 용서는 감정의 구덩이에서 스스로를 꺼내는 구원이기도 하다. 어떤 유형이 우세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언제나 남의 떡은 더 커 보이고 내가 벗지 못하는 굴레를 쉽게 떠나 편해지는 그들을 보고 있자면 홀로 구덩이에 갇혀있는 스스로가 딱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