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김유식의 디지털 카메라 인사이드'라는 커뮤니티가 개설된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디지털 카메라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곳이었다. 당시는 필름 카메라에서 디지털 카메라로 넘어가는 과도기 중에 있는 시기로 신문물이라 할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에 대한 관심이 엄청났던 시기이기도 하다.
평소에 사진에 관심이 전혀 없던 사람들도 수천,수만장의 사진을 찍고 필름을 인화할 필요 없이 바로 볼 수있는 이 기기를 접하고나면 열에 아홉은 당장 구매 욕구가 생길 정도였다. 그렇게 디지털 카메라 한 대 쯤 가지고 있는 것은 필수인 시대가 다가왔다.
아무튼 디시인사이드는 그 거대한 유행의 파도의 꼭대기에 올라탄 운좋은 서퍼와도 같았다. 사람들은 너도 나도 디지털 사진을 디시에 업로드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했다. 사진들의 종류는 점점 많아져서 게시판 몇개로는 부족했다.
자동차 사진을 올리는 곳은 자동차 갤러리, 식물을 사진을 올리면 식물 갤러리. 이런식으로 갤러리가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사진을 다루는 곳으니 게시판이라고 부르지 않고 갤러리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디시인사이드 대표의 독특하다면 독특한 운영방식이 디시인사이드의 보이지 않는 슬로건으로 작용하면서 디시 고유의 색채를 지니기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익명성과 최소한의 통제이다. 익명을 기본으로 활동할 수 있으니 진입장벽이 낮았고 솔직할 수 있었다. 그리고 통제 받지 않으니 표현의 자유도가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이 높았다.
물론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욕설이나, 그들만의 유행어, 반말 등은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까지도 고질적인 문제로 제기되고 있기는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요소들이 디시인사이드의 꺼지지않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정돈되고 관리가 엄격한 다른 커뮤니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자유로운 표현의 맛. 그것을 느끼고 싶다면 다시 찾을 수 밖에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디시인사이드는 디지털 카메라 붐이 언제였는지 아득해지는 이 시점에도 약 9만개 이상의 갤러리 그리고 하루 90만개 이상의 게시물이 올라오는 대형 커뮤니티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사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 세상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곳으로 탈바꿈한 디시는 각분야에서 상당한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는 고수들도 다수 활동하고 있다. 장난 같은 게시물 더미들 사이에서 수준 높은 정보나 자료를 종종 만나 볼 수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왜 디시에 여전히 머물고 있는 것일까?
사람은 본 모습을 가린채 가면을 쓰고 살아가야 할 때가 있다. 그것은 가난하든 부자이든 훌륭한 사람이든 아니든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답답한 가면을 벗어던지고 그저 생각나는대로 정돈되지도 않은 말을 내던질 곳이 필요했다. 초면에 반말을 주고 받았지만 기분 나쁘기 보다는 오히려 자유로운 느낌이 묘하다.
누군가 올린 최신 정보를 읽어 내려가다 마지막에 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화가 난다기 보다는 이런 쓸데없는 짓에 정성을 들였을 누군가를 생각하며 피식 웃게 된다. 그렇게 한바탕 어수선하게 놀던 그들은 나가면서 다시 가면을 쓰고 옷깃을 여민다.
디시는 이제 그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유서깊은 대나무 숲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