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하지 않는 사이

by 아포드

보통 일정 나이를 넘어설 무렵이 되면 사람들은 어디서 배우기라도 한 듯이 나이를 하기 시작한다. 친구들과 모이는 날이면 '어우 이제 나이가 드니까 몸이 전 같지가 않아.' 또는 '이 나이 되니까 경차는 못 타겠더라' 등등 물리적 그리고 입지적 나이 타령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이렇게 나이하기 좋아하는 타입의 사람들은 외적으로도 빨리 늙는 것도 볼 수 있다. 가령 신체 나이가 25세라고 할지라도 서류상의 나이가 30세라면 '아! 나는 이제 30대니까!" 하는 마음가짐을 장착하고 좀 더 어른스럽게 행동하고 어른스러운 상황에 놓이려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어른'이 진정한 의미의 어른이라면 축하할 일이겠지만 그저 알람에 맞춰 도달한 어른이라는 것은 보다 많은 '행세'를 할 수 있는 자격과 권리를 원하는 것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것이 '꼰대'의 길로 접어드는 그 첫걸음이 되고는 한다.


그리고 왠지 더 이상 외모관리를 하지 않는 것을 어른의 덕목으로 삼는 경우도 꽤 많다. 이제 청춘도 아닌데 뭘. 이제 결혼도 했는데 뭘.이라는 식으로.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이를 주제로 하는 이야기들은 가급적 피하는 편이다. 그럴듯한 철학을 가지고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고 그 시작은 그저 스스로 나잇값을 못한다는 자각이 들면서였다. 해당 나이가 되면 주임을 달고, 대리를 달고, 무슨 차를 몰고, 결혼을 하고 등등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나이를 허투루 먹은 건가 싶기도 했고 나잇값을 못했으니 나이에 대한 행세 또한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기야 어쨌든 그렇게 한국식 나이 문화에서 한 걸음 물러선 삶을 살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습관이 되어 굳어지면서 손아랫사람을 만나도 굳이 반말을 해야겠다거나 어른처럼 굴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따라서 내가 인생의 선배라는 이유로 한 수 가르치려 들거나 조언을 내미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그러자 뜻밖에도 어린 친구들이 오히려 더 많은 말들을 걸어왔고 깊은 속내도 어렵지 않게 드러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이하지 않는 태도가 그들에게 편안한 수평선을 제공한 모양이었다. 그런 식으로 열 살 차이가 훌쩍 넘는 친구들과도 이야깃거리만 있다면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일반적인 경우와는 다르게 나이와 통성명을 맨 나중에 하는 경우도 많았다. 혹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묻고 싶은 것을 묻는다. 그뿐이었다.


나이가 훨씬 많은 연장자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유교사상을 발휘해서 모시는 듯한 태도와 말투를 취하고 싶지 않았다. 연장자라고 해서 꼭 그만치 배울 점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 공경은 오히려 공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건강에 관련된 안부 인사를 하는 것도 실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표면적으로는 고맙다고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신은 이제 '그래야만 하는 나이'라고 선고를 받은 일이 유쾌할 수는 없는 것일 테니까.


그렇게 내 나이를 부를 때마다 내가 나이를 먹는다. 또 상대의 나이를 부를 때마다 상대에게 나이를 먹인다.





인생은 60세부터라는 식의 무턱 댄 긍정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자신의 나이를 되새기지 않는다고 나이를 먹지 않는 일 같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누군가의 나이를 커닝하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나이를 먹어가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마주 본 서로에게서 나이를 걷어내고 나면 사람과 사람만 남는다. 그러면 나눌 수 있는 것이 더 많아진다.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더 많아진다. 비로소 그 사람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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