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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포드 Aug 26. 2024

기타와 이적과 카페 속의 장면

노래로 고백하는 것은 좋지만 선곡은 신중히




저녁 7시쯤이었다.  오른쪽 어깨에 검은색 기타 가방을 멘 한 남자가 쭈뼛쭈뼛 카페 안으로 들어온다.


"어서 오세요~"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던 나는 손님에게 인사를 하고 손을 수건에 닦으며 주문받을 준비를 한다.  캐주얼 정장 차림에 30대 초중반쯤으로 보이는 그 남자는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할 말이 있다는 듯  카운터에 다가온다.


"저기 주문은 한 사람 더 오면 할게요."


"그리고 이것 좀 잠시 맡아 주실 수 있을까요?"


메고 온 기타 가방을 내게 건네며 한 말이었다.


"네. 그러시죠"


나는 흔쾌히 기타 가방을 받아들고 돌아서서 구석에 카페 용품을 쌓아둔 박스들 곁에 기타 가방을 비스듬히 세워둔다. 남자는 주방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맨 구석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고 마침 비수기인 겨울철과 그날따라 유난히 손님이 없었던 홀에  나와 단 한 명의 손님 사이의 어색함을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이 간신히 희석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한 30분쯤 지났을까? 그의 일행으로 보이는 한 여자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오빠 이 시간에 웬일이야?"


가슴까지 내려오는 길지만 단정한 머리에 크로스백을 멘 차림의 여성은 아마도 근처 회사에서의 퇴근길에 남자의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고 이곳 카페까지 오게 된 모양이었다. 


그렇게 둘은 커피를 주문하고 테이블에 서로를 마주 보고 앉는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두런두런 빼곡하게 대화를 나눈다. 그렇게 또 30분이 지났을 무렵 갑자기 남자가 일어서서 카운터로 향해 온다.


"저어.. 아까 맡긴 것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아, 네."


나는 구석에 세워두었던 기타 가방을 꺼내 다시 돌려주었고, 남자는 가방에서 기타를 꺼내더니 다시 여자의 맞은편에 앉는다. 그리고 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하기 시작한다.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마주 보며 숨을 쉴 수 있어서


그대를 안고서


힘이 들면 눈물 흘릴 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


솔직히 혼자 보기 아까운 진풍경이었다.


다만 문제는 하필 이적의 '다행이다'를 고백 곡으로 선정한 것이 그의 실수라면 실수였다. 이 노래는 솔직한 사랑의 감정을 꾸밈없고 운치 있게 표현한 곡이기도 하지만


'젖은 지붕' 


'지친 하루와 고된 살아남기'


'그대와 나눠먹을 밥'


마치 '널 사랑하지만 우리의 앞날은 고되고 초라할 거야' 같은 궁상맞은 코드로 해석되기도 해서 이 곡이 한창 인기를 얻고 있던 시기에도 여자들이 남자들로부터 듣고 싶지 않은 고백 곡 중 하나로 꼽히는 노래였기 때문이다.


여하튼 여자는 노래를 듣는 내내



"오빠...."


"오빠?"


"오빠?!?"


와 같은 당황스러운 감탄사 아닌 감탄사를 연발하며 간신히 남자의 노래를 끝까지 듣는다.


둘만의 이벤트를 마친 두 사람은 또 한동안 대화를 나누는가 싶더니 여자가 먼저 조용히 일어나 가게 문을 열고 나간다.


혼자 남겨진 남자는 잠시 앉아있다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쓱 일어서더니 나를 향해 몸을 반쯤 돌린다.


"잘 안됐네요...^^"


그렇게 그도 가게를 떠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홀에는 한쪽 귀퉁이에 놓인 기타와 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겨를이 없었던 건지 기타를 버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애꿎은 그 기타를 다시 가방에 기타를 챙겨 넣어두다가 미안하게도 웃음이 터진 어느 날의 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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