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일리언 시리즈를 좋아하는 관객들의 부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에일리언 1의 '리들리 스콧'이 펼치는 세계관 속의 서사와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
에일리언 2의 제임스 캐머런'의 완성도 높은 액션과 대중적인 블록버스터를 선호하는 사람.
물론 이 두 사람만 감독을 했던 것은 아니고 그 외의 감독들도 있었지만 에일리언 시리즈는 크게 1편과 2편으로 축약되곤 한다.
나 같은 경우는 리들리 스콧의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1편을 더불어 '프로메테우스'와 '커버넌트'까지 이어지는 우주 공간 특유의 황폐하고 절망적인 분위기와
질감 그리고 영화 전반에 걸친 묵직한 연출 덕에 클라이맥스가 아닌 장면들에서도 느껴지는 등장인물들의 무게감 있는 대사와 몰입도 때문이다.
음식으로 치면 맛 자체는 첫 입에 확 다가오지는 않지만 씹을수록 식감이 좋아서 계속 먹게 되는 그런 유의 음식이 아닐까 싶다.
추가로 스페이스 호러라는 장르 속에 수십억 년 전부터 시작된 연대기와 그 긴 시간 속에서 행성들을 오가며 펼쳐지는 서사 그리고 인류의 기원을 소재로 스케일 있게 담아냈다는 것에서 상당히 취향에 부합하기도 한다.
물론 그 서사를 꼼꼼하게 나열하거나 친절하게 풀어내주는 않는다.
그저 작은 단서나 복선들을 작품들 속에 흩뿌려 놓고 관객들이 그걸 줍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를 권장한다.
이는 취향에 맞으면 엄청난 시간 속에서 벌어졌을 일들을 추적하며 스케일이 젖어들 수 있지만 단면적으로 폐쇄된 우주 공간 속에서 공포와 스릴을 느끼러 온 장르 영화에 충실하길 바라는 관객들에게는 뜬구름 잡는 서사가 될 수 있고 양측 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바이다.
그럼 이번에 개봉한 '로물루스'에서 느낀 포인트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JUMP! JUMP!!
이번 시리즈는 '페데 알바레즈'가 감독을 맡았고 '리들리 스콧'이 제작에 참여했다. 사실 개봉 전부터 리들리 스콧의 참여는 상당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등장인물들을 얼른 제한되고 폐쇄된 공간에 가두고 관객들에게는 롤러코스터에 탄 것을 환영한다는 듯이 분위기 또한 정색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곳곳에 깜짝 놀라게 하는 점프 스퀘어가 다수 포진되어 있고 비싼 '돌비 시네마'로 관람한 덕에 방향성이 가미된 입체적인 사운드로 관객들을 쉴 새 없이 들썩이게 한다.
바로 옆 좌석에 앉았던 여자 관객은 러닝 타임의 대부분을 눈을 가린 채 움츠리고 관람했고 점프 스퀘어가 등장할 때마다 실제로 점프를 해서 나에게 4D 관람을 하는 듯한 체험을 선사했다...
페데 알바레즈 감독은 영화 '맨 인 더 다크'의 감독으로 이미 폐쇄된 어둠 속의 긴장감을 훌륭하게 묘사한 전적이 있다.
이번 에일리언 로물루스에서도 그 실력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데 정말 러닝타임 내내 팽팽한 긴장감의 고삐가 도무지 느슨해질 줄을 모른다.
다만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분위기와 텐션을 끝까지 유지해낸 전개와 연출은 훌륭하나 점프 스퀘어의 구간이 너무 촘촘해 누군가에겐 다소 무감각해 지거나 누군가에겐 지나친 피로감을 안겨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너무 놀라게 하는 것에만 치중한 고급스럽지 못한 일부 연출을 꼽을 수 있겠다.
장르에 충실한
위에 적었듯이 템포는 다소 느리게 가져가는 감이 있지만 서사와 분위기 형성에 충분한 시간을 들이는 그의 방식을 좋아하고 감독을 맡은 것은 아니지만 그의 입김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기대와는 다르게 영화는 빠르게 본론으로 진입하고 장르적 특색을 진하게 띄우기 시작한다.
즉 액션과 오락성에 비중을 두었다는 이야기이며 영화는 시종일관 어트랙션을 타는 듯한 짜릿한 자극을 선사한다.
대신 그만큼 영화의 무게감은 가벼워지고 서사가 들어갈 공간은 줄어들었다. 물론 서사를 전면적으로 배제한 것은 아니며 오락성에 치중한 와중에도 '프로메테우스'와 '커버넌트'의 서사를 외면하지 않고 나쁘지 않은 이음새로 잘 마감된 점은 인정할만하다.
전작들의 오마주 그리고 차기작에 대한 열린 가능성
전작들을 두루 본 사람은 로물루스에 틈틈이 전작들을 오마주 하는 연출들이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에일리언 시리즈의 상당한 팬으로 알려진 페데 알바레즈 감독의 애착이 드러나기도 하는 부분인데 자칫 기존 시리즈들과 동떨어진 외딴 작 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었을 부분을 연대감으로 어우러지게 해주는 훌륭한 장치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본다.
또한 본작의 핵심인 새로운 타입의 에일리언은 '프로메테우스'와 '커버넌트'의 서사를 이어가면서 앞으로 새로운 이야기의 줄기가 형성될 수 있는 교두보 같은 역할과 함께 영화의 클라이맥스 또한 장식한다.
에일리언이라는 프랜차이즈는 지난 수십 년간을 거쳐 이제 헤리티지마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모든 시리즈가 한결같이 마음에 들지는 않을 수 있으나 한편으론 이런 호불호가 있을 수 있는 장르 영화가 오랜 세월 동안 명맥을 유지해왔다는 점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고령의 리들리 스콧인 만큼 차기작의 엔딩 크레디트에서 그의 이름을 얼마만큼 더 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시작한 이 오래된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는 이는 꼭 그였으면 한다.